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의 상고 여부가 주목된다. 검찰은 1심 전부 무죄 이후 직권남용 등 핵심 혐의를 제외하고 일부 혐의만 다투는 이른바 '반쪽 항소'에 나섰지만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법무부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가 이미 이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데다, 별도 특검 도입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상고 여부를 둘러싼 검찰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항소심 "월북 판단은 의견·평가…허위로 보기 어려워"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3부(이승한 부장판사)는 전날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하자 당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이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몰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해경이 발표한 1·2·3차 수사 결과가 허위인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이씨가 선박에서 이탈한 뒤 북한 해역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진 월북이 아니었다고 단정할 자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해경이 월북 판단의 근거로 제시한 구명조끼 착용 사실과 북한군에 대한 월북 의사 표명 정황은 당시 확보된 첩보를 통해 인정되는 사정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 해경의 판단이 다소 성급했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면서도 "각 수사 결과 발표문의 결론은 사실의 적시라기보다 의견이나 평가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기관의 발표가 국민에 신뢰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의견·평가 제시가 사실 적시로 성격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해경의 수사 결과 발표가 공공의 신용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허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 포기 요구·수사팀 반발 사이…검찰의 절충안
이번 항소심은 애초부터 검찰이 핵심 혐의를 상당 부분 덜어낸 상태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1심은 피고인들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범죄 증명이 부족하다며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당시 재판부는 "망인의 피격·소각 사실을 보고 받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사실을 확인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것'을 명확하게 지시했다"며 "피고인들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위 지시를 어겼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심 전부 무죄 선고 이후 검찰 내부에서는 항소 여부를 둘러싼 고민이 이어졌다. 정부·여당은 공개적으로 항소 포기를 요구했고, 수사팀은 항소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검찰 수뇌부는 전면 항소 포기와 항소 강행 사이에서 일부 혐의만 다투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월북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진 월북으로 오인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발표해 망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만 항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해서만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명예훼손 등 혐의로 항소했고,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노은채 전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에 대해선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이 같은 결정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다. 유족 측은 "부분 항소는 사실상 항소 포기와 다름없다"고 반발했고, 법조계 일각에서도 사건 은폐 의혹의 핵심인 직권남용 혐의 등이 항소 대상에서 빠지면서 2심 재판의 범위가 크게 축소됐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미래위 조사 대상에 상소 자제 기류까지…깊어지는 상고 고심
관심은 이제 검찰의 상고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검찰이 상고를 결정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1심과 2심 재판부가 모두 같은 결론을 내린 데다 수사와 기소 과정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출범한 법무부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는 지난 10일 1차 조사 대상 사건 7건을 선정하면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포함시켰다. 이들 사건은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에서 거론된 사안들로, 미래위는 대검찰청에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를 요청한 상태다. 미래위 조사가 본격화하면 수사 착수 경위와 기소 판단, 공소 유지 과정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여권을 중심으로 별도 특검 도입 필요성도 거론된다.
무죄 사건에 대한 상소를 자제하라는 정부 기조가 강한 점도 검찰이 상고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무죄가 나오면 면책하려고 항소·상고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검찰의 기계적 상소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도 이런 흐름에 맞춰 1·2심 모두 무죄가 난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형사상고심의위원회를 1심 전부 무죄 사건의 항소 심의까지 포괄하는 '형사상소심의위원회'로 확대하는 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일선 검찰청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다만 검찰로서는 상고를 곧바로 접기도 조심스럽다는 시각이 있다. 상소 자제 기류가 뚜렷하긴 하지만, 여기서 상고를 포기하면 실체적 진실을 끝까지 가리는 역할마저 내려놓는 것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1, 2심 무죄가 났으니 상고를 한다면 일단 상고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며 "하지만 상고까지 결정하는데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 서 전 실장과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는 그대로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