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의 세균이 장으로 이동해 간질환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석기태 교수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 변화를 분석해 간질환의 진행 단계와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을 포함해 지방간, 간염, 간경변, 간암 환자 등 총 1168명의 대변 샘플과 전 세계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장내 미생물 유전체(메타게놈) 데이터 2376건을 통합한 총 3544건 규모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간질환이 진행될수록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 확인됐다. 건강한 장 환경이 무너지면서 특정 세균만 남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연구팀은 질환 단계에 따라 장내 미생물이 수행하는 기능 자체가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간염 단계에서는 특정 세균의 활동이 증가하는 변화가 나타났고, 간경변 단계에서는 몸에 해로운 독성 물질을 만드는 기능이 늘어났다. 간암 단계에서는 세포 손상과 관련된 물질이 더 많이 생성됐다.
특히 간경변과 간암 환자에서 베이요넬라(Veillonella), 리길락토바실러스(Ligilactobacillus) 같은 구강 유래 세균이 공통적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타액과 대변 샘플을 함께 확보한 12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입안에서 발견된 베이요넬라가 장에서도 동일하게 검출됐다. 이는 구강 세균이 실제 장으로 이동해 정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생존율 분석에서는 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간경변·간암 환자 183명 중 장에서 베이요넬라가 많이 검출된 환자군의 생존율은 20% 초반에 머문 반면, 수치가 낮은 환자군의 생존율은 약 60%로 나타났다. 두 환자군 간 생존율 차이가 약 3배 이상 벌어졌다.
또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크게 감소해 특정 세균만 우세하게 남은 환자들 역시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강 유래 세균의 장내 정착 여부와 장내 미생물 균형 상태가 간질환 환자의 사망 위험과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 구성과 기능 정보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반 질환 분류 모델(AUC)도 구축해 향후 대변 기반 비침습 검사와 고위험 환자 선별 도구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석 교수는 "간질환의 진행 과정에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대규모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특히 구강 유래 세균이 장내 환경 변화와 질환 악화에 연관될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향후 대변 기반의 안전하고 비침습적인 간질환 진단법 개발은 물론 미생물을 표적으로 한 맞춤형 예방 및 치료 전략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간질환 전 단계에 따른 장내 미생물 및 기능 변화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 영국 소화기학회 국제 학술지인 'GUT'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