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친구가 대신 운전했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한 운전자에게 범인도피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범인도피방조 및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음주운전을 한 뒤 함께 있던 친구가 경찰에 자신이 운전자라고 허위 진술하고 음주측정까지 받도록 하는 과정에서 이를 용이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2심도 이를 유지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을 허위 범인으로 내세우는 데 가담한 행위를 범인도피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 중에 8명은 원심의 법리가 타당하다고 봤다. "범인을 위해 타인이 허위로 자백해 범인도피를 범하는 것을 범인 스스로 방조하는 경우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죄가 성립된다는 현재의 법리는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진범이 타인을 허위 범인으로 내세우는 이른바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의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 방향을 왜곡하고 진범에 대한 수사와 재판, 형 집행을 어렵게 만들어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 범인의 가담 형태가 교사인지 방조인지에 따라 처벌 여부를 달리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허위 범인을 내세워 진범의 발견을 어렵게 만드는 점에서 형사사법 작용을 방해하는 위험성은 동일하다는 취지다.
반면 이흥구·오경미·서경환·권영준·박영재 대법관 5인은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소수의견으로 "범인을 위해 범인도피죄 본범이 허위 자백이나 진술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범인도피죄를 범하는 것을 범인 스스로 방조한 경우 범인도피방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즉, 방어권 남용 법리를 방조행위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범인이 자신을 위한 타인의 허위 자백 또는 진술을 촉진·강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범인도피 범행을 방조한 경우, 그와 같은 방조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