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때로 그의 고통과 기억까지 떠안는 일이 된다.
최은미 작가의 신작 소설집 '다른 사랑'은 2020년 '눈으로 만든 사람'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2025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작 '김춘영'을 비롯해 '그곳', '고별' 등 최근 단편 7편을 묶었다.
이번 소설집의 인물들은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들어간다. 유년의 상처가 묻힌 고향, 매장문화재 발굴 현장, 탄광촌, 재난이 휩쓴 지역에서 과거의 기억과 타인의 고통을 마주한다.
'무장하는 날'에서는 발굴 현장에서 목격한 군대 내 폭력이 화자의 오래된 수치와 공포를 일깨운다. '정선'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상실이 남은 고향에서 동창과 재회한 뒤 폭력적인 방식으로 과거와 맞선다.
김승옥문학상 대상작 '김춘영'은 탄광촌 여성의 생애를 기록하려는 연구원과 인터뷰 대상자인 김춘영의 관계를 그린다.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전형적인 틀보다 한 개인의 고유한 기억과 목소리에 다가가려는 과정을 담았다.
후반부의 '그곳'과 '이 모든'은 재난과 애도를 다룬다.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고 돕는 일이 순수한 선의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부담, 책임을 함께 감당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표제와 맞닿아 있는 '고별'에서는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여성이 사랑하는 남편과의 이별을 결심한다. 작가는 사랑을 누군가를 부드럽게 끌어안는 감정으로만 그리지 않고, 관계의 조건과 책임을 직시하고 때로는 떠나는 선택까지 포함하는 감각으로 확장한다.
'다른 사랑'은 욕망과 윤리, 폭력과 연대가 뒤엉킨 순간에 인물들을 세운다. 개인의 기억과 한 장소에 축적된 사회적 상처가 만날 때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가능해지는지를 묻는 소설집이다.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어머니가 숨진 뒤에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한 달 가까이 곁을 지킨 열네 살 소년. 그가 끝내 숨기려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
'뿌리 깊은 나무', '별을 스치는 바람'의 이정명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표류 소년'은 어느 겨울 중학생이 등교하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는다는 신고에서 시작된다. 여성청소년과 경사 남보라는 학생의 집에서 매트리스 위에 나란히 누운 모자를 발견한다. 어머니 안도연은 숨진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아들 요한은 손목에 상처를 입었지만 가까스로 살아 있다.
현장에 남은 단서는 요한의 갈색 학습노트다. 공부 일정과 학습 메모만 적힌 듯한 노트를 따라 보라는 요한의 담임교사와 이웃, 어머니의 주치의, 과외교사 등을 차례로 조사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어머니의 죽음이 스스로 택한 결과인지, 타인에 의한 범죄인지 의문이 커진다. 특히 사건 당일 집을 방문한 과외교사 장한솔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빈틈없는 정황이 반드시 진실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작품은 사건의 진상을 좇는 추리소설의 틀 안에서 모자 사이에 쌓인 사랑과 억압, 침묵을 들여다본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지는 강압은 사랑일 수 있는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침묵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소설 속 인물은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건 사악해서가 아니라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표류 소년'은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연약함이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