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1단독 김대규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검사가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없는 범죄를 수사한 뒤 기소까지 진행했다는 것이 판단의 핵심이다.
재판부는 변호사법 위반죄가 검찰청법 제4조가 정한 검사의 직접 수사 대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검찰이 수사개시권이 있는 범죄와 관련성이 있다는 이유로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검사가 인지한 범죄가 아니라 고발장에 기재된 혐의에 불과해 직접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비슷한 판단은 다른 사건에서도 이어진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는 올해 1월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에서 검사가 검찰수사관을 통해 수사를 진행한 뒤 직접 추가 수사와 기소까지 한 것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반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지난 2월 현근택 변호사 사건에서도 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 범죄가 아니라며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현행 검찰청법은 검사가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부패범죄·경제범죄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해당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지한 범죄 가운데 직접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수사가 허용된다. 이러한 체계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검찰청법 개정을 거치며 마련됐다.
최근 법원은 이러한 검찰의 관련성 판단을 보다 엄격하게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는 지난해 선고된 대법원 판결이 최근 하급심 판단 변화의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송치한 안양 아파트 부정청약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별도로 드러난 부산·속초·대구 지역 아파트 분양 비리까지 직접 수사해 기소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검찰이 본래 송치된 사건과 직접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범죄까지 수사한 것은 수사개시권 제한 규정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이러한 위법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는 공소기각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이 기준을 제시한 만큼 하급심이 더 이상 수사권 문제를 형식적으로 넘기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익명의 한 부장판사는 "과거 재판에서는 검찰 수사권 범위 위반 주장이 거의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지만 대부분 관련 사건이라는 이유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대법원이 수사개시권을 벗어난 수사의 위법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향후 비슷한 사례의 판결들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청법 개정 이후 처리된 사건 가운데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례들이 적지 않을 수 있다"며 "대법원 판단이 나온 이상 향후 피고인 측이 수사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투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결국 이런 흐름이 과거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청법 개정에서 생긴 '빈틈'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제한하면서도, 관련성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는 경계를 모호하게 남겨둔 탓에 그 여파가 4년이 지나 법정에서 무더기로 드러나고 있다는 시각이다.
문제는 이런 경계 다툼이 다가오는 검찰개혁 이후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수사를 전담하는 중수청과 기소를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권한이 쪼개지면 수사·기소 분리는 지금보다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다만 검사가 수사 범위를 넘었는지 따지는 현재의 다툼은, 중수청과 경찰·공수처 사이의 수사 관할이나 공소청이 송치 사건을 보완수사할 수 있는지 등 새로운 경계 다툼으로 모습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정작 이 경계를 정할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권한 배분을 촘촘히 설계하지 못하면 향후 수사 공백이나 피해자 구제 미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