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기다린 차별금지법, 이젠 더 '완벽하게' 간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지 20년. 인권위가 설립되고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처음 나온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차별에 대한 한국사회의 감각은 더 예민해졌지만, 너도나도 '차별당하고 있다'며 오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차별금지법이 단순히 '차별은 금지된다'고 선언하는 수준을 넘어 더 복잡한 차별사안들까지 규율하고, 실질적인 구제력을 갖춘 법이 돼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그저 '좋은 법'이 아니라 '실효성 있고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17년간 시정명령 6건…차금법은 달라야

인권법학회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19일 공동주최한 '차별금지법 권고 20년: 한국사회 현재적 쟁점과 차별금지법' 학술대회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거듭 무산되는 사이 먼저 입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의 경험을 향후 포괄법 제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 패널로 참석한 김성연 제주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장차법상 시정권고 권한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후 시행명령 등 강제절차는 법무부로 이원화한 것이 큰 문제가 됐다"며 "장차법 위반에 대해 인권위에 100명이 진정을 하면 3명만 결정을 받을 정도로 인용률이 낮고 권고에 강제력이 없어 인권위를 활용한 시정조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인건위가 권고를 십분 활용하고, 미이행 시 법무부에 관련 자료를 넘겨 시정명령으로 강제성을 주는 협조 체제가 유기적으로 작동됐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인권위가 조사한 자료를 법무부에 넘겨 이어받는 것조차 양 기관의 미묘한 지위 다툼 문제로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관장은 "장차법이 시행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간 법 위반에 대해 법무부 시정명령이 이뤄진 건 6건 뿐"이라며 "그 긴 시간동안 법무부의 장애인차별시정심의위원회 회의는 11번 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다른 구제절차보다 더 빠른 조치를 위해 시정절차를 만들어놓았는데, 결국 장애인 차별사안이 발생하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원으로 향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관장은 "장차법에서 확인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선 반드시 시정조치 기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임시조치 등 소송 절차 등이 분명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이도 더해가는 '복합차별' 다룰 차별금지법 필요

19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권고 20년:한국 사회 현재적 쟁점과 차별금지법' 학술대회. 정다운 기자

18세 학교 밖 청소년이면서 성소수자인 사람. 장애가 있는 여성이자 이주민인 사람.
 
한 개인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결합·상호작용하는 상황에서 차별이 더 가중되는 경우 역시 차별금지법이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1부 발제에서 박주영 노동자권리연구소 연구위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차별금지사유들이나 차별금지영역, 차별보호대상을 한데 모아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사각지대 없이 모든 유형의 차별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는 차별을 판단할 때 그 원인이 된 정체성 속성들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성격을 이해하고 차별의 정의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구제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도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김 관장은 "장애가 있는 학생에 대해 학교에서 차별·혐오·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학교폭력위원회 등 학교 내의 절차가 우선되다보니 장차법에 관련 내용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적용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라운드테이블 패널로 나온 변성영 중앙노동위원회 차별시정전문위원은 "복합차별 사안에 대해 법원 판단을 받아본 경험에 따르면 차별을 야기한 요인이 조금이라도 꼬여있거나 복합적이면 (판단 주체가) 헤매는 것 같다"고 했다. 안효철 국가인권위원회 혐오표현대응과 사무관은 "복합차별에 대해 아직 인권위 자체적인 지침은 없다"며 "관련 사안이 접수되면 주된 진정요지에 따라 진행을 하고 진정인이 가진 다른 차별적 요소가 사건에 영향을 미쳤거나 불이익이 있는 경우라면 결과보고서에 반영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장차법, 남녀평등고용법, 기간제근로자보호법, 외국인근로자고용법 등에서 각각 개별적으로 장애, 성별, 고용형태, 국적 등에 대한 차별을 규율하고 있음에도 포괄적 법안이 필요한 이유 역시 다시 강조됐다.
 
보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는 "면접에서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해도 채용에서 탈락하는 구체적 불이익이 있지 않으면 기각된다"며 "노동현장에서의 차별적 발언은 그 자체로 구성원을 배제하는 피해를 발생시키는 문제인데 개별적인 차별금지법률로는 포섭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관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별적 차별금지법률들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반대 너무 심해 못해? 여론 뒤에 숨은 정치권 질타도

한편 차별금지법은 지난 20년 간 제대로 된 '비판'과 '손질'조차 당해보지 못한 점도 지적됐다. 자극적인 문구나 잘못된 정보를 앞세운 시위는 격렬히 전개되지만, 정작 국회 내에서 차별금지법을 두고 의원들이 차분히 쟁점을 토론한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는 "21대 국회 당시 법사위 청문회가 한 번 열렸을 뿐 조문 하나하나를 두고 어떤 조항이 부담인지, 어떻게 개선하면 토론의 여지가 있을지 등 논의다운 논의는 국회에서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며 "차별시정제도를 이원화 했을 때의 문제 등 오늘 나온 논의들이 이제는 국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차별금지법 입법에 참여하려던 의원들이 문자폭탄으로 업무가 마비되는 등 부담을 핑계로 들었는데, 요즘은 차별금지법 사안이 아닌 다른 많은 입법사안에 대해서도 그러한 시위가 이뤄지지만 어떤 입법은 밀어붙인다"며 "결국은 선택적으로 감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법학회 회장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국민 다수가 지지하지 않는 이슈들을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선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보면 지지율이 50% 미만인 법안도 정치인들이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밀어붙였다"며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70%까지 지지가 나오는데 우리 정치가 이 문제를 무책임하게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대 여론이 문제가 아니라 국회가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반대가 있더라도 밀어붙일 수 있는 국회와 정부라고 본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입법)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 끝에 발언권을 얻은 한 참석자는 "대전에서 휴가를 내고 참석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운을 떼며 어쩌면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는 차별금지법 '권고' 20년의 의미를 짚었다.
 
"차별금지법이 20년간 제정되진 못했지만 그 논의들이 개별법들의 사이사이에 반영되고 차별금지에 대한 근거들이 조금씩 마련돼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조금씩 더 숨을 쉴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바로 기본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오늘의 이야기들이 개별법들 안에 추가되면서 사회가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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