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5만의 축구 변방 퀴라소가 월드컵 무대에서 역사적인 첫 승점을 수확했다. 37세 베테랑 골키퍼 엘로이 룸의 유효슈팅 15개 차단이라는 경이로운 '선방 쇼'가 만든 기적이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퀴라소 축구대표팀은 21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에콰도르와 0-0으로 비겼다. 지난 1차전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했던 퀴라소는 이로써 1무 1패(승점 1)를 기록, 퀴라소 축구 역사상 월드컵 본선 첫 승점을 올렸다.
퀴라소는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최소 인구 국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지휘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의 지도 아래 사상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이번 무승부로 조 4위에 머물렀으나, 코트디부아르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하면 32강 진출까지 노려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에콰도르 역시 1무 1패(승점 1)로 3위에 머물렀다. 두 팀이 비기면서 앞서 코트디부아르를 2-1로 꺾은 독일(2승, 승점 6)은 조 1위로 32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단연 퀴라소의 수문장 룸이었다. 미국 프로축구 마이애미FC 소속인 1989년생 룸은 에콰도르의 파상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이날 에콰도르는 퀴라소(슈팅 10개)의 세 배에 달하는 28개의 슈팅을 퍼부었다. 이 중 유효슈팅만 15개였으나 룸이 버틴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한 경기 15개 선방은 역대 월드컵 공식 집계(1966년 이후) 사상 통산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1위는 2014년 브라질 대회 당시 미국 골키퍼 팀 하워드가 벨기에전에서 기록한 16개다. 다만 하워드의 기록은 연장전까지 포함된 수치다. 전·후반 90분 정규시간만 놓고 보면 룸의 15개 선방이 역대 월드컵 최다 기록이 된다.
에콰도르의 공세는 경기 초반부터 거셌다. 전반 3분 모이세스 카이세도의 패스를 받은 에네르 발렌시아가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잡았으나 룸의 첫 선방에 막혔다. 전반 12분 존 예보아의 왼발 슛과 전반 20분 발렌시아의 문전 슈팅 역시 모두 룸의 손에 걸렸다. 전반 42분 예보아의 날카로운 슈팅마저 룸이 몸을 던져 쳐내며 전반은 0-0으로 끝났다.
후반에도 룸의 선방 쇼는 계속됐다. 후반 5분 카이세도의 강력한 중거리 슛을 막아낸 룸은 후반 14분 플라타의 문전 헤딩슛까지 차단했다. 에콰도르는 후반 20분 발렌시아의 헤딩슛과 케빈 로드리게스의 연속 슈팅으로 몰아쳤으나 이마저도 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기 막판 운도 따랐다. 후반 45분 에콰도르 앙헬로 프레시아도가 올린 크로스가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며 퀴라소는 위기를 넘겼다. 에콰도르의 파상 공세를 육탄방어로 막아낸 퀴라소는 결국 값진 승점 1점을 지켜내며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