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했지만 실무협상을 앞두고 양국 간 기싸움이 거세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에 이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둘러싼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모습이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정부도 발표를 유예했던 7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두고 막판 고심에 들어갔다.
MOU 체결했던 美-이란, 헤즈볼라 교전·통행료 놓고 신경전
22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21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종전 후속 실무협상에 돌입했다. 앞서 양국은 종전 MOU(양해각서) 체결 이후 첫 실무협상을 열 예정이었지만,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 교전이 발생하면서 일정이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양국이 대화 국면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협상 초기부터 거센 신경전을 벌이며 MOU 이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실무협상 하루 전 이란이 이스라엘-헤즈볼라 교전을 문제 삼으며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란 측은 "MOU 제1조 불이행 등 미국의 명백한 신의성실 원칙 위반과 약속 불이행에 대응하고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하는 선박에 대해 폐쇄를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 차도 여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SNS를 통해 "휴전 기간인 60일 동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통행료가 없을 것"이라며 "60일이 지난 뒤에도 통행료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란이 휴전 종료 이후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한 정면 반박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합의가 최종 타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중동 국가들의 수호천사로서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통행료를 부과하는 경우는 예외"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해협 통항 비용 부과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실무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란의 통행료 부과를 부정하고 미국의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양국은 MOU 체결 당시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 개방에 합의하며 종전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실무협상 단계에 들어서면서 세부 쟁점을 둘러싼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추가 무력 충돌 가능성까지 남아 있어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 통항 불확실성에 7차 최고가격제도 '안갯속'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7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고시도 안갯속에 빠졌다.
앞서 정부는 최근 7차 최고가격제 발표를 유예하며 주말 동안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 상황을 지켜본 뒤 발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통상부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7차는 통항 재개 등 종전이 실체적으로 진전되고 있는지, 국제유가 상황이 어떤지를 지켜본 뒤 판단할 예정"이라며 "이번 주말을 고비로 여러 진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미국과 이란이 MOU에 서명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조기 개방 가능성에 기대가 모였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통항 재개 여부가 다시 불투명해지면서 정부도 정책 발표 시점을 놓고 고심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급 정상화 가능성이다. 안정적인 원유 수급이 가능하다는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 최고가격제 유지 여부나 향후 종료 시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 실장은 "원유가 수송로에서 빠져나온 뒤 다시 진입할 수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라며 "이 수급이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과 이란의 MOU 체결 이후에도 통항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운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 18일 해협 통과 선박은 25척으로 최근 들어 가장 많았다. 그러나 협상 불확실성이 커진 19일부터는 통항 선박 수가 다시 한 자릿수로 줄었다.
최고가격 산정의 주요 기준이 되는 국제유가 역시 당분간 높은 변동성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9일 월간 보고서에서 "미국과 이란의 잠정 협정이 중동산 원유 수출 회복을 예고하고 있지만 기뢰 제거 장기화와 미해결 운송 문제 등으로 향후 하방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이번 주 미국과 이란의 실무협상 진행 상황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최고가격제 운영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의 협상 추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상황, 국제유가 흐름 등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최고가격제에 대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