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위원회가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난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를 각 투표소에 이송한 것이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선거 공정성을 담보할 핵심 장치인 투표용지 일련번호를 현장에서 수기로 작성한 것도 적법 절차를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지적됐다.
22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빗발치자 자체 판단으로 무번호 투표용지를 사용하거나 인근 투표소의 남는 투표용지를 옮겨 유권자에게 배부했다.
하지만 현행 공직선거법 제151조 제1항에 따르면 투표용지는 선거일 전일까지 읍·면·동위원회에 송부해 봉함·보관해야 한다. 선거 당일에 투표용지를 추가로 송부하거나 이송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구·시·군위원회는 '관례'라는 이유로 선거일 당일 투표용지를 이송했다. 투표가 중단되거나 지연된 투표소는 서울 광진구·서초구·강남구·송파구, 부산 북구, 대구 동구, 인천 연수구, 경기 의정부시·김포시 등 전국적으로 총 26곳에 달했다.
진상규명위는 보고서에서 "유권자의 참정권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하더라도, 선거일 당일 투표용지 이송은 법적 근거가 없는 적법절차 미준수"라고 지적했다.
투표용지를 추가 배송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를 인쇄·송부·인계하는 모든 과정에는 선관위 소속 정당추천위원이 참여해 입회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 당시 일부 구·시·군위원회는 정당추천위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투표용지를 배송했다.
특히 선관위는 국가 중요 문서인 투표용지를 정식 행정 봉투가 아닌 일반 종이가방이나 지퍼백에 아무런 봉인 없이 담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구·시·군위 소속 직원뿐만 아니라 사무보조원(알바생), 사회복무요원, 지자체 공무원 등을 동원해 배달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경비경찰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투표용지 일련번호를 수기로 작성한 것도 지적됐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제10항은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반드시 '인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해 위·변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적 근거도 없이 넘버링 기계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심지어 투표관리관이 투표소 현장에서 볼펜 등으로 일련번호를 직접 수기 작성해 나눠준 것으로 드러났다. 송파구 선관위의 경우 다른 용도로 쓰이는 기계를 가져와 일련번호를 찍기도 했다.
진상규명위는 "공직선거법에는 일련번호 수기 작성에 관한 근거 규정이 없다"라며 "수기로 작성할 경우 투표용지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음에도 관행적으로 이를 사용한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