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100세 일기로 타계

1987년부터 18년 6개월간 연준 의장 역임
'세계 경제대통령'의 역할을 잘했다는 평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초래했다는 비판

연합뉴스
1990년대 미국의 호황 시대를 이끌며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22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이날 "그린스펀이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워싱턴 DC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인 1987년부터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직전인 2006년까지 18년 6개월 동안 연준 의장으로 일한 그린스펀은 '세계 경제 대통령' 역할을 잘했다는 평가와 함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불씨를 키웠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린스펀은 연준 의장 취임 두달 만에 미국 주식 시장 폭락 사태인 '블랙 먼데이'가 발생하자 과감한 자금 공급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 
 
1987년 10월 당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동안 무려 22.6%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시장이 폭락하면 연준이 붕괴를 막아준다는 '그린스펀 풋(put)'이란 용어가 이때 나왔다. 이후 아시아 외환위기, 닷컴 버블 붕괴, 9·11 테러 등 대형 경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적극적이면서도 정교한 금리 조절로 시장 충격을 완화시켰다. 
 
특히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 때에도 그린스펀은 로버트 루빈 당시 미 재무장관과 함께 막후에서 위기 전염 방어를 위해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미국과 주요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한국 기업 및 금융기관 대상 단기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줄 것을 유도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한국이 국가 부도 위기를 넘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명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그린스펀의 전기를 쓰며 시장을 '지휘하는 자'라는 의미로 '마에스트로'란 별명을 붙였다. 
 
복잡하고 거대한 미국 경제를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세심하게 조율했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그린스펀이 2006년 연준 의장으로서 18년 6개월의 임기를 마쳤을 때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 총재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퇴임 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자, 과도한 금융 완화가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라는 재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거품'을 키웠다는 비난도 따라왔다. 
 
금융시장의 자율적인 균형에 대한 그린스펀의 믿음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위험한 대출 관행에 대한 느슨한 감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06년 1월, 그린스펀이 퇴임했을 당시 미국 경제는 견고했고, 인플레이션은 낮았다. 주식과 주택 시장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택 가격 상승세가 멈추자 주택 건설이 위축됐고, 부실 대출로 인한 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곪은 상처처럼 문제가 서서히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2008년,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에 직면했고 베어 스턴스와 리먼 브라더스 같은 월스트리트의 유명 금융 회사들이 파산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도 주택을 잃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린스펀은 자유시장 경제의 정신을 세우고 구현한 인물"이라면서도 "미국 대형 은행의 연쇄 파산과 대규모 실업을 유발했던 금융 위기가 그린스펀의 평가에 그림자를 계속 드리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생전 그린스펀은 자신이 2008년 경제 위기에 대해 과도한 비난을 받았고, 1990년대 후반의 경제 호황에 대해서는 과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08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하지 않은 일로 칭찬을 받았다. 이제는 하지 않은 일로 비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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