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에 내팽개쳐진 내 청춘" 6·25 참전 소년병들 국가에 책임 묻는다

지난 2022년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한 (왼쪽부터) 박태승, 故 장병율, 장성곤 어르신과 하경환 변호사. 하경환 변호사 제공

"76년 전 우물가에 내팽개쳐진 물지게 값을 청구합니다."

1950년 8월 고(故) 장병율 씨는 대구 동인동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갔다 이유도 모른 채 경찰차에 실려갔다.

그 길로 그는 6.25 전쟁의 참혹한 전장 속으로 내몰렸다.

"우물가에 놔두고 온 물지게가 우예 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중에 국방부 장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물지게 값 물아내라 칼끼다."
 
끝내 그는 자신의 청춘을 앗아간 국가로부터 사과도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지난 2024년 눈을 감았다.

그를 비롯한 6·25 전쟁 소년병들이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적 근거가 없이 강제 징집된 당시 소년병들이 빼앗긴 자신들의 청춘에 대해 국가에 뒤늦게 법적 책임 묻고 나선 것이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6.25 전쟁 당시 소년병이었던 장성곤(93), 박태승(93) 어르신과 故 장병율, 故 하명윤 어르신의 유족이다. 소송 청구 금액은 원고 한 명당 위자료 1억 원이다.

지난 2014년 소년병 어르신들을 위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시작으로 지난 12년간 진상규명신청과 각종 청원 등을 도맡아 온 하경환 변호사가 이번 소송 변론을 맡는다.
 
자신을 대신해 물지게 값을 받아달라던 고 장 씨의 뜻을 받든 것이다.

입대 당시 만 15~17세였던 이들은 지난 1950년 7~8월 강제 징집돼 기초군사훈련만 받은 채 전장에 동원됐다.

UN군이 투입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국군은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병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인근의 지역에서 장정들을 징집하는 과정에서 17세 이하의 아동들까지 아무 법적 근거 없이 전쟁에 동원됐다.

일부는 강제로 징집을 실시해 약 1주일 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은 채 다부동 전투, 안강전투 등 치열했던 격전지에 바로 투입시켰다.

그 당시 약 3만 명에 이르는 아동들이 전투에 투입됐고 그중 약 3천 명의 어린 영혼들이 전장에서 산화했다.

6·25 참전 소년병은 한국전쟁 당시 만 17세 이하의 아동이었음에도 정식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고 전선에 투입된 정규군을 뜻한다.

1950년 당시 대한민국 병역법에 따르면 만 17세 이하의 아동들은 징집 대상자도 아니었고 병역의 의무조차 없었다.

학생 신분으로 전쟁에 투입된 학도의용군의 경우 비정규군으로 전쟁 발발 이듬해 해산돼 학교로 돌아왔지만 소년병은 군번이 부여된 정규군이어서 복교령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전선에 투입됐다.

정전 후에도 한참이 지난 1954~1955년 정식으로 제대 명령을 받고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소년병들의 존재는 6·25 전쟁 이후 약 60여년 동안 인정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국방부가 소년병에 대한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11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6.25 참전 소년병은 2만 9603명으로 그 중 전사자가 2573명이다.

2년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소년병의 희생에 걸맞은 국가의 배상과 보상, 예우를 권고했다.

법령 근거 없이 시행된 병역 의무로 소년병들이 입은 생명권 침해와 육체적·정신적 피해, 학습권 박탈 등에 대해 국가가 특별법을 제정해 소년병의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고 소년병들에 대한 피해 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가 이들을 외면한 사이 소년병 전우회는 이미 오래 전 해산됐고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다.

이들의 숭고한 법정 싸움에 변호사와 시민들도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소송을 이끄는 하경환 변호사는 소송비를 받지 않고 무료 변론를 진행하며 인지대와 송달료 등 비용을 사비로 충당했다.

하 변호사와 뜻을 함께 하는 시민들은 패소할 경우 소년병 어르신 등이 부담해야 할 소송 비용을 전액 분담하겠다고 약속했다.

하 변호사는 1억 원의 위자료는 상징적 청구일 뿐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가 이번 소송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르신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과거의 위법한 강제 징집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국무총리, 혹은 국방부 장관이 직접 생존해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이번 국가배상소송의 종착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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