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외로운 '잠재적 고립자'들의 세상…'환대 사회'로 나아갈 때"

[고독 死각지대, 고립청년 : 전문가편⑤]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인터뷰

서울 시내 한 취업 준비 학원에서 취업 준비생이 자율 학습하는 모습.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김성아 연구원 "고립청년 54만 명, 현실판 '오징어 게임' 중"
②김수영 교수 "자기경영에 빠진 청년들, '풍요로운 고립'에 갇혔다"
③오찬호 사회학자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
④8050 넘어 '9060 재앙' 맞은 일본…"이대로면 한국도 위험"
⑤"외로운 '잠재적 고립자'들의 세상…'환대 사회'로 나아갈 때"
(끝)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은 외롭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38.2%가 '평소 외롭다'고 응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독과 외로움은 현대인이 언제든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 되었다.

1인가구 증가, 혼인율 저하, 개인주의 확산 등에 따른 공동체 결속의 약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과거의 공동체가 해체된 자리에는 어느새 '각자도생'의 논리만 남았다. 청년들에게 성과와 능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수용되는 경험은 낯설기만 하다.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대해 "외로움은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정도가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할 정도라면 그것은 개인의 결함이라기보다 '사회적 고통'"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누구도 영원히 성공하고 승리할 수는 없으며, 삶의 모든 순간 좌절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잠재적 고립자'라고 강조한다.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환대의 사회'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말하는 환대란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때조차 손을 내밀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개인을 온전히 수용하고 환대해 주는 공간이 많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외로움을 건강하게 통과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의존'하는 존재"라고 짚으며, '의존의 재발견'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의존하며 타인의 취약함을 들여다볼 때에 비로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며 환대의 사회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고독 死각지대, 고립청년' 기획기사의 후속으로 진행한 전문가 인터뷰. 마지막 순서로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에게 우리 사회가 외로운 개인들의 사회를 넘어 환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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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께서는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존재라고 분석하신 바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인식하고 고립을 택하는 청년들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A. 르네 지라르가 말했듯, 인간의 욕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매개로 형성되는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의 성격을 갖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 모방의 대상이 매우 좁고 획일적입니다. 모두가 같은 대학, 같은 직장,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욕망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죠.

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은 단순히 '부족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 박탈'을 의미하게 됩니다. 청년들이 고립을 선택하는 것은 이 끝없는 비교의 회로에서 탈출하려는 자기 보호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곧 나의 점수가 되는 세상에서, 그 시선을 차단함으로써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는 아픈 저항인 셈입니다.

Q. 한국 사회는 다른 방식의 삶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하기보다는 획일적인 성공 경로를 따르도록 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A. 압축 성장을 거치며 우리는 '효율'을 위해 정답이 정해진 삶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이 요구하는 '표준적 인간'이 되는 것이 생존의 유일한 길이었죠. 여기에 강력한 가족주의가 결합하며, 자녀의 성공이 부모의 성취가 되는 구조가 고착되었습니다.

'정상성'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선 우선 '생애주기의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몇 살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시계(Social Clock)'를 이제는 정말 멈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실패해도 인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심리적·제도적 안전망이 최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르게 살아도 전혀 문제없다'라는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가 미디어나 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합니다.

Q.한국 사회가 유독 청년들의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청년이 구성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A. 한국의 능력주의는 매우 잔인한 형태를 띱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배는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실수'나 '멈춤'은 곧 '자원 낭비' 또는 '시간 낭비'로 간주됩니다.

한국 사회가 특히 청년들의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까닭은, 청년 시기야말로 모든 능력과 노력을 투여해서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결정적 시기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보완하거나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청년들은 극도로 효율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삶에 여유가 없다 보니,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실패나 고통에도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결국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약자에 대한 혐오나 배제가 정당화되는 사회, 즉 '공감의 불능' 상태가 만연한 사회가 될 위험이 큽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적 신뢰라는 가장 중요한 무형의 자본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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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서 근원적 문제(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지나친 경쟁 등)를 해결하지 않은 채 청년들만 '고쳐서' 사회로 복귀시키는 접근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접근해야 할까요?

A. 현재의 정책은 청년들을 다시 '생산 가능 인구'로 편입시키는 데 급급해 보입니다. 하지만 고립이란 '고장 난 개인(Broken Individual)'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증상(Social Symptom)'입니다. 정부는 청년을 노동력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 봐야 합니다.

일자리를 매칭해주는 것을 넘어, 이들이 현재 머뭇거리고 있다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이행기의 시공간'을 보장해야 합니다. 또한, 사회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심리 상담이나 의료적 지원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국 그 개인에게 낙인과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의 강도를 낮추고 다양한 청년기 삶의 모습을 포용하는 구조적 개혁이 병행되어야만 정책의 진정성이 전달될 것입니다.

Q. 고립 청년을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왜 고립을 택하고 일하지 않는 개인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식의 반발도 존재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연결되는 일이 결국 전체를 위하는 일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A.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내가 당장 문제가 있지 않아도 옆에서 문제가 있다면, 내 삶도 영향받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고립은 장기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의료, 복지, 범죄, 생산성 저하)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잠재적 고립자'라는 사실입니다. 나라고 해서 영원무궁토록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성취자가 내일의 낙오자가 될 수 있는 불안한 구조 속에서, 고립 청년을 돕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사회적 보험'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력', 즉 '책임(Response-Ability)'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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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온전하게 수용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왜 중요할까요?

A. 받아들여짐, 즉 수용된다는 것은 나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드러내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는 것입니다. 성과와 능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나의 존재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상태죠.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존재입니다. 온전한 수용을 경험한 사람은 비로소 타인을 환대할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연결의 감각만이 우리를 끊임없는 '모방적 경쟁'의 굴레에서 해방해주고 각자가 고유한 존재로 살아갈 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Q.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을 넘어 환대와 관용을 사회 전반의 문화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 전환과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A. '의존의 재발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립'을 강조하지만, 사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의존과 자립이 서로 대치하는 개념이 아니라, 의존하면서 동시에 자립하는 인간상을 사회가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기본소득'과 같은 경제적 토대나, 지역사회 내의 '공유 공간' 확충이 필요합니다. 또한, 학교 교육에서 경쟁보다는 협력과 돌봄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완전히 개편되어야 합니다. 환대는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안정적인 사회구조 위에서 꽃피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Q. 지금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는 일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A. 저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인간의 취약함에 대한 인정'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사회에는 몇 살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지나치게 강고한 '사회적 시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유에서든지 조금이라도 그 시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사회로 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 시계를 따르지 않는 삶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강함, 빠름, 유능함만을 칭송하느라 약함, 느림, 서툶의 가치를 잊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취약한 존재입니다. 이 취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서로의 취약함을 보듬어주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우리를 이 지독한 외로움과 경쟁에서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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