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44분' 러닝 전도사 안정은이 빠르게 달리지 않는 이유[페이스메이커]

[러닝 고수를 찾아서…'러닝 전도사' 안정은①]
안 고수가 가장 추천하는 서울 내 러닝 코스는?
10㎞ 44분대, 풀코스 서브4 기록 보유…세계 7대 마라톤도 완주
하지만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천천히 꾸준하게 달리는 게 좋아"
어린 시절 겪었던 우울증…우연히 접했던 러닝
"내가 '무언가를 해낸 사람'이라는 느낌 받기 시작했다"

인터뷰하는 '러닝 전도사' 안정은 고수. 이우섭 기자

"저는 할머니가 돼도 달리고 싶어요."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러닝 열풍'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러닝 전도사' 안정은 고수(高手)다.

달리기는 안 고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고, 새로운 삶을 선사하기도 했다. '페이스메이커'는 안 고수와 함께 달리며 '러닝 스토리'를 들어봤다.

6월 중순 서울 잠수교 인근. 안 고수는 자신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러닝 장소라며 기자를 이촌 한강공원으로 안내했다. 흙이 깔린 길 양옆에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서울 중심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였다.

"가장 추천해 드리는 러닝 장소는 이촌 한강공원입니다. 서울은 대부분 아스팔트만 많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흙길을 밟으면서 달릴 수 있고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한강 근처에서도 이런 숲길을 달릴 수 있어요. 의외로 이 장소를 잘 모르세요.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으로 달리기 즐길 수 있어요."

안 고수가 추천한 러닝 코스인 서울 이촌 한강공원. 이우섭 기자

이날 안 고수와 기자가 함께 달린 거리는 4.69㎞. 1㎞당 5분 45초 페이스로 뛰었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사실 안 고수는 출중한 기록을 보유한 러너다. 10㎞ 개인 최고 기록은 44분대, 풀코스는 3시간 48분대에 주파한 적 있다. 풀코스 완주 경력은 14차례나 된다.

세계 7대 마라톤도 경험했다. 2019년 도쿄·베를린·뉴욕 마라톤을 시작으로, 2021년 시카고, 2022년 보스턴·런던, 2024년 시드니 마라톤까지 완주했다.

하지만 안 고수는 이제 기록 욕심을 내려놓았다. '오래 달리는 삶'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빠르게 달리지 않은 지는 오래됐어요. 빨리 뛰라면 뛸 수는 있는데, 기록에 대한 욕심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빨리 달려서 부상이 오는 것보다는 천천히 꾸준하게 달리는 게 좋더라고요."

이 기사는 기자가 직접 뛰며 작성했습니다.

속도를 늦추자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몽골 고비사막에서 뛰었던 250㎞ 마라톤 일화를 전했다.

"50대 외국인 여성분이 기억에 남아요.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결승선을 통과했어요. 빨리 달려서 부상당한 사람보다 더 빠르게 결승 지점에 통과하더라고요."

최근 출전했던 뉴질랜드 마라톤에서도 잊지 못할 순간을 맞이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너무 추웠어요. 근육이 떨릴 정도였죠. 그런데 갑자기 비가 그치더니 눈앞에 엄청 큰 무지개가 나타났어요. 감동하면서 달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지금은 '러닝 전도사'로 불리지만, 이전에는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다. 20대 초중반에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힘든 경쟁을 뚫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순탄치 않았다. 개발자로 일을 시작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후에는 외국 항공사 승무원으로 합격했지만 비자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도 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던 시기였다.

SNS 캡처

그때 안 고수는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문구를 우연히 접했다. 작은 용기를 냈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체력이 안 좋아서 5분밖에 못 뛰었어요. 그런데도 성취감이 들었어요. 5분이 6분이 됐고, 6분이 7분이 됐어요. 그때부터 '내가 무언가를 해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무너졌던 자신감을 되찾은 뒤, 본격적으로 러닝의 매력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안 고수가 생각하는 러닝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러닝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요. 전 생애에 걸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는 임산부일 때도 달리기를 했었고, 영유아 아이를 키우면서도 달리기를 하고 있어요. 건강한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요."

스트레칭하는 안정은 고수. 이우섭 기자

안 고수는 나이가 들어도 달리고 싶다고 했다.

물론 기록은 점점 느려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는 점을 이미 깨달았다. 다른 사람과 속도 경쟁보다는 각자의 속도대로 꾸준하게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5분밖에 뛰지 못했지만, 이제는 세계 7대 마라톤 완주 메달을 모은 '러닝 고수'가 됐다.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낸 안 고수는 누군가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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