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20대 여성 소방관에게 회식·음주를 강요하는가 하면, 사망 후에는 유족의 감찰 요구를 묵살하는 등 소방 조직 내에서 자행됐던 갑질·비위 행위가 정부 조사 결과 드러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지난 11일부터 소방청 본청과 광주소방안전본부, 광산소방서를 대상으로 집중 점검한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앞서 광산소방서 소속 소방공무원 A씨는 지난해 10월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 등을 발견되지 않았지만, A씨의 유가족 및 남자친구는 고인이 생전 과도한 회식과 직장 내 갑질 등에 시달렸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광산소방서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지만, 불과 7일 만에 "특이사항이 없다"고 결론내고 조사를 마쳤다. 이후 광산소방서가 작성한 사망면직서에 '고인이 남자친구와의 관계 불안을 호소했다'는 내용이 담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증폭됐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회식 음주 강요 등 소방관의 사망원인과 경위는 물론 감찰조사 요청 묵살경위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대치의 문책을 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결국 점검단이 △회식·음주 강요 등 갑질행위 △유가족 측 감찰 요구 묵살 △불법적인 상담자료 노출의 경위와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점검한 결과, 제기됐던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소속 부서에서 회식에 참여할 것을 사실상 강요받으며 2024년 7월 1일부터 지난해 10월 3일까지 15개월 동안 총 24차례 술자리에 참석했다.
일부 회식의 경우 호프집, 나이트, 노래방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최장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 피해자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후래자 삼배(늦게 온 사람 술3잔)', '파도타기' 등을 폭탄주로 한번에 마시도록 하는 이른바 '원샷'을 강요하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에게 서장 ·과장 등 남성 상급자 옆에 앉도록 하거나, '오빠라고 불러라'며 부적절한 호칭을 사용하도록 강요한 사실도 확인됐다.
피해자가 개인 해외여행을 갈 때 상사가 술·커피를 구입해오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주말까지 이어진 서장 등의 퇴임식 행사 준비, 전임 서장 부친상·빙부상에서의 상차림·심부름, 상급자 이동을 위한 차량 운행 등 업무와 무관한 사적 노동까지 강요받은 것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이 감찰을 요구했지만, 광산소방서는 물론 광주소방안전본부와 소방청 본청까지 모두 유가족 등의 감찰 요구를 사실상 묵살했다.
광산소방서는 지난해 10월 유가족의 감찰 요구에 대해 지난해 7월 이후 공식 회식이 3회에 불과했다면서 피해자의 업무 태도 등만 담당 과장 등에게 파악한 후 '특이 사항 없음'으로 조사를 종결했다.
특히 광산소방서는 갑질행위 가해자로 확인된 부서장이 감찰 부서장을 맡아 사실상 '셀프 조사'했고, 유가족이 요청한 '피해자의 사망 경위'에 대해 아예 조사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익명제보시스템을 통해 조사 요청이 이뤄졌지만, 광주소방안전본부는 광산소방서의 자체 조사 결과를 송부받아 형식적으로만 확인했다. 12월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다시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객관적 증빙자료가 제출되면 향후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안내할 뿐, 자료가 제대로 제출되지 않았다는 명분을 들어 5개월이나 사건을 방치했다.
결국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소방청지부가 올해 5월 민원을 제기하자 소방청 본청이 감찰 착수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 때도 △부실 감찰의 당사자인 광주소방안전본부 직원 6명을 조사반에 편성하고 △조사 대상을 갑질 관련자 1명, 심리상담 결과 노출 관련자 2명으로만 좁히는 등 부실하게 계획을 수립한데다 △이마저도 국무조정실의 점검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달여가 지나도록 관련자 대면 조사조차 실시하지 않는 등 사실상 감찰에 손을 놓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광주소방안전본부는 직원들의 심리상담을 위탁한 상담업체에 피해자의 심리상담 자료를 무단 요구한 후, 이를 왜곡해 작성한 '소방공무원 극단적 선택 발생 보고' 문건을 사망면직 공문서에 첨부한 채 발송해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심리상담 결과를 노출시키기까지 했다.
당시 광주소방안전본부는 남자친구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은 제외하고 '남자친구와의 교제 어려움 토로'만 발췌해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대국민 공개 문서로 15개 유관부서에 발송한 것이다.
점검단은 △회식·음주 강요 등 갑질 △유족 측의 감찰 요구 묵살 △피해자 심리상담 자료 노출 등의 비위행위가 확인된 공직자 17명(광산소방서 9명, 광주소방안전본부 6명, 소방청 본청 2명)에 대한 엄중한 징계처분을 소방청에 요구할 계획이다. 또 비위행위에 관리 책임 등이 있는 퇴직자 2명에 대해서도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한편 이번 점검에서 추가로 드러난 사행행위 등 광산소방서 내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수사의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점검단은 소방청이 조직문화 개선 및 소방관 인권 보호를 위한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도록 통보할 예정이다.
국무조정실은 "이번 사망사고가 소방 조직의 전근대적 내부 문화와 부실한 소방관 인권 보호 실태에 기인했다"며 "이번 점검 결과가 공직사회 갑질 문화 폐해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고,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