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20대 여성 소방관 누가 죽였나

국민 생명 책임진 소방조직, 정작 직원은 못지켜
상사의 갑질과 사건 은폐가 합작한 죽음

광주 광산소방서 제공

20대 여성 소방관의 사망을 둘러싼 소방조직 내 집단 괴롭힘과 은폐조작의 실체가 드러났다. 상사들의 갑질도 모자라 소방조직이 피해자측에 2차 가해까지 저지르며 사건을 덮어버리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사건은 8개월 여 전인 2025년 10월 초 발생했다. 스스로 생을 마친 사망자는 예비신부였다. 광주 광산소방서 소속이었던 A씨는 평소 약혼자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팀회식을 했는데 10번이나 토했다", "죽을 것 같다"며 생전의 고통을 토로했다.
 
24일 발표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점검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A씨는 사망 직전까지 모두 24차례 음주 회식을 강요받았다. 일부 회식은 나이트클럽이나 호프집, 노래방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술자리에서는 '남성 상사 사이에 앉아라', '서장에게 술을 받아라',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라'는 등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비상식적 요구를 강요받았다. 1박2일로 진행된 서장의 퇴임식 행사 준비, 간부의 부친상,장인상 상차림 준비 등 사적인 봉사에도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고인이 세상을 등진 뒤 벌어졌다. 20대 꽃다운 청춘이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됐는지 소방본부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대신 사건 은폐와 조직 보호에 급급했다.
 
광주 광산소방서는 지난해 유가족의 감찰요구에 대해 피해자의 업무 태도 등만 담당 과장에게 파악한 뒤 '특이사항 없음'으로 조사를 종결했다. 갑질행위 가해자로 확인된 부서장이 감찰 부서장을 맡아 '셀프 조사'토록 한 점이나 약혼자의 거센 항의에도 사건을 5개월이나 방치한 점은 소방조직이 진상을 밝힐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걸 반증한다.
 
올해 5월 소방청 본청에 민원이 제기된 뒤에도 감찰은 더디게 진행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들어 국무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국무조정실 차원에서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지기에 이르렀다.
 
이번 사건은 소방 조직내 잔존하는 전근대적 문화와 부실한 인권 보호 의식에 기인한다. 재난 현장의 지휘 체계가 만든 군대식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갑질과 음주 강요의 악습으로 변질된 것이다. 20~30년 전까지 횡행하던 부정적인 음주문화가 공무원 사회 일부에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게 놀랍다.
 
유족 측의 감찰 요구를 묵살했다는 건 내부 자정기능의 상실을 의미한다.  소방청은 불과 몇 년 전의 교훈도 잊었단 말인가?  채해병 사망사건에서 보듯 조직적인 은폐는 문제를 키울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소방조직이 정작 자기 직원을 구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건강한 조직은 아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남성 중심의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는 요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엄중 처벌할 필요가 있다. 셀프 감찰의 폐해를 차단하려면 사건 초기 단계부터 제3의 감사 기구가 조사와 징계를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이같은 악습이 소방조직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 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소원수리를 받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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