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의 변동성 장세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기업 실적이나 대외 변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 만에 시장 분위기가 뒤바뀌는 흐름이 반복되면서 '변동성 터널'에 갇힌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역사상 11번 '서킷 브레이커' 이번 주에만 두 차례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81% 내린 8411.21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도 4.10% 하락한 851.37에 거래를 마치며 양 시장이 동반 급락했다.코스피는 전장 대비 1.31% 내린 8813.18로 출발한 뒤 낙폭을 빠르게 키웠다. 장중 한때 8126.84까지 밀렸다. 오전에는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거래가 20분간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잇따라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 서킷브레이커는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째로, 역대 발동 11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올해 집중됐다.
이번 주 국내 증시는 올해 들어 이어진 '변동성 장세'를 압축해 보여줬다. 22일 코스피는 장중 큰 폭으로 출렁였지만 종가 기준 9114.55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며 상승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하루 뒤인 23일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미국 기술주와 반도체주 급락 여파가 국내 증시를 덮치면서 코스피는 9.99% 폭락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에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투자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다음 날 24일에는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코스피가 3.26% 반등했고, 25일에는 미국 마이크론의 깜짝 실적에 힘입어 반도체주가 급등하면서 5% 넘게 상승했다. 유가증권시장에는 급등에 따른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하며 전날의 공포를 빠르게 되돌렸다.
그러나 반등은 오래가지 못했다. 26일 간밤 미국 빅테크와 반도체주 조정 여파로 코스피는 장중 8% 넘게 급락했고,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불과 하루 전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했던 시장에서 하루 만에 다시 거래가 중단되는 초유의 변동성이 연출됐다.
이달 19거래일 中 8거래일4% 이상 급등락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VKOSPI는 지난 24일 장중 97.78까지 치솟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날도 장중 한때 93.21까지 올랐다.
이 같은 급등락은 일회성 현상이 아니다. 코스피는 이달 들어 총 19거래일 가운데 8거래일이나 종가 기준 4% 이상 오르거나 내렸다. 5일(-5.54%), 8일(-8.29%), 9일(8.18%), 10일(-4.52%), 12일(4.63%), 15일(5.20%), 23일(-9.99%), 25일(5.24%) 등이다.
이 가운데 8% 이상 급등락한 날만 세 차례에 달했다. 특히 23일에는 910.71포인트 급락하며 종가 기준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대외 악재보다 '반도체 쏠림'이 키운 변동성
이번 주 극심한 등락은 대외 악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반도체주 조정이 촉매가 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된 시장 구조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확산 등이 맞물리며 작은 충격도 큰 가격 변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유안타증권 이재원 연구원은 "현재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은 레버리지 ETF의 영향이 크다"며 "애플의 제품 가격 인상, 오픈AI IPO 연기설, 호르무즈 해협 불확실성 등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의 변동성을 야기할 만한 재료는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결국 이날 하락의 본질은 새로운 대형 악재보다 반도체 쏠림 포지션의 되감기"라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집중된 패시브 ETF 수급까지 겹치면서 작은 노이즈에도 매도 압력이 크게 증폭됐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 급락장에서 저가 매수로 시장 하방을 지지했던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매수 여력도 상당 부분 소진된 점이 변동성을 키운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7.11%에 달한다. 최근 코스피 반등도 반도체주가 주도하면서 시장 쏠림이 심화했고, 두 종목을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까지 가세하면서 변동성을 더욱 키웠다는 분석이다.
삼성증권 조아인 연구원은 "최근의 주가 변동성은 펀더멘털보다는 투자자들의 심리 변화에 기인한 성격이 강하다"며 "국제유가는 중동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반도체 수요 둔화 우려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에도 투자심리 변화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지만, 거시 여건과 기업 이익 성장세가 견조한 만큼 이번 조정이 추세적인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