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페'(영희 페스티벌)는 끝나고 나서도 계속 이어지는구나."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마포구 마포문화재단 아트홀 맥·플레이 맥·갤러리 맥과 야외광장에서 열린 '영희 페스티벌'(이하 '영희페'). 한국의 '릴리스 페어'(Lilith Fair, 1997년 미국에서 시작한 여성 뮤지션 중심의 페스티벌)에 비견되며 개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은 '영희페'는 3천 명의 관객과 함께하며 막을 내렸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영희페'의 기획자이자 싱어송라이터, 작가인 오지은을 만났다. 약 4개월 동안 자신을 던져 갈아 넣어 만든 축제를 마친 소감은 어떤지 물었을 때, 오지은이 한 답은 위와 같다. '영희페'의 공식 일정은 끝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감상과 격려와 응원, 또는 품평과 비난까지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며 바로 거기까지가 '영희페'라는 의미다.
"말도 안 되게 멋진 후기"도 읽었지만, 트랜스젠더 코미디언이 영희페의 출연진으로 무대에 섰다는 점 때문에 트위터(X)를 중심으로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획자 오지은의 '급' 이야기까지 나왔다.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도 많이 왔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광과 기쁨을 주고받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그는, '영희페' 마지막 날 즈음부터 크고 작은 공격을 받았다.
다양한 감상과 반응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적어도 '영희페'를 다 치르고 난 그 "다음 주부터 시작될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라는 오지은은 "저한테는 '영희페'의 달의 뒷면 같은 게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너는 혼자가 아니니까 안 좋은 소리가 나오더라도 무시해. 너무 이런 거에 집착하지 마'라는 말만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달랐다. '네가 뭔가를 겪고 있는 줄은 어렴풋이 알았는데, 이런 걸 겪고 있는지는 몰랐어.'
"먼저 안부 연락을 넣는 종류"가 아닌, "제가 너무 사랑하는 인간들"이 갑자기 '지은아, 밥 먹었어?' 하고 말을 걸었다. 오지은은 "원래 이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영희페'를 하거나 봤다"라며 "제 고독에 관해 사람들이 알아준 거다. 진짜 고독했는데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됐다"라고 돌아봤다.
오지은은 "제가 상처를 받은 건 그냥 현상이고, '영희페'에서 무언가를 느껴서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그냥 '지은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는 연락도 받았다. 정말로 이런 건 사랑으로 덮는 수밖에 없구나 싶다"라며 "(이 모든 것이) 전부 솥에서 끓고 있다"라고 바라봤다.
"여성 창작자들이 선사하는 음악과 문화와 영화와 코미디와 담론"을 만날 수 있는, "예술을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대규모 페스티벌"이자, '철수'로 대변되는 남성의 방문도 환영하며 '영희의 마음'을 가진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 '영희페'였다.
앞선 언론 인터뷰에서 오지은은 '영희페'의 출연진 대다수가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장소의 한계가 있어 어느 순간 섭외를 멈춰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보통 뉴스레터도 10명에게 보내면 1명이 읽고 그러잖아요. 근데 10명이 다 읽은 거예요. 그런 식이어서 멈췄죠."
'뷰티풀 민트 라이프'(뷰민라) 등 여러 페스티벌을 만든 엠피엠지 뮤직 출신인 오지은에게 '축제 만들기'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저 페스티벌 집 장녀"라고 웃은 그는 "뮤지션을 비롯한 출연진은 알아서 다 잘하는 사람이고, 스태프들도 다 잘하는 분들이었다. 사실은 '첫해에 이렇게까지 된다고?' 할 정도였다.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모두가 '민페 끼치지 않으려고' 했다. 되게 여자들답지 않나? 하는 분들도 정말 정성을 다했다"라고 밝혔다.
'영희페'를 만들 때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누군가는 출연진에게 '정치나 성별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영희페'에서 성별 얘기를 하지 말라고, (무대) 직전에 말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라고 운을 뗀 오지은은 "여기까지도 '영희페'인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끔은 "다 때려치우기!"를 실행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수모를 견디"면서, "내일을 잘 맞이하도록 숨기고 참아"내는 과정을 거쳤다. 홍대에서 20년 넘게 공연한 경력이 있는 그조차도 '네가 그럴 급은 아니잖아'라는 말로 '자격'을 의심하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꺼드럭대는 여자를 세상은 1초도 봐주지 않"았다.
"급이 안 되는데 이걸 어떻게 열었을까요? 진짜 신기하죠. 이 여자(본인)가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서들 그러나 봐요. 이미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뭘 사라져요? 하지만! 사랑해요. (웃음) 이게 제 재능이구나 싶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게 정신병인 줄 알았는데 재능이라는 걸 '영희페' 덕에 알았어요. 저도 여기에 대해서 긴가민가하는 포인트를 가지고 최지은 작가님이 글을 써 줬을 때 '아, 이건 내 재능이구나' 했어요."
만화가 들개이빨과 함께 '우리가 여성 뮤지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주제로 '영희페' 마지막 날 무대에 올랐던 최지은 작가는, "페미니스트로서 실수하는 게 두려웠고 비난받는 게 무서웠"고 "연대라는 단어는 짧지만 책임감은 무겁고 복잡했다"라고 고백하며 이렇게 썼다.
"긴 인생을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계속 싸우기 위해 숨 고르고 충전할 수 있는 자리가 나에게 너무 필요했는데 오지은이라는 사람이 그걸 만들어냈다. (…) 일단 말하자면 여자가 무슨 판을 벌이는 일에는 남자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 그러니까 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며칠이 지난 뒤 내가 아직도 놀랍다고 생각하는 것은 페미니스트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 영희 페스티벌이라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사실보다도,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인간 오지은이 맨손으로 이 일을 시작해서 끝까지 해냈다는 것이다."
'영희페'는 음악 공연 외에도 강연, 라운드 테이블, 좌담, 스탠드업 코미디, GV(관객과의 대화) 등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자리였다. '홍대마녀'로 불렸던 오지은은 비슷한 시기 '홍대여신'으로 불린 동료 음악가 요조와 함께 '홍대여신과 홍대마녀, 이면에 있던 것'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거는 꼭 1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지은은 "왜 여자는 '나 이거 싫었어'라고 말할 수 없을까. ('홍대여신'이나 '홍대마녀' 같은 수식어로) 이득을 봤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간판'을 시킨 거고, 그래서 (음악가로서의) 권위가 없어져 버린 건데… 여성은 (누가) 질문해 줄 때까지 말하면 안 되는가? 아니다. 그래서 말한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오지은은 "저는 (인디 신에) 감사한 게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좀 불쾌하긴 했지만 마녀는 마성, 마력이라는 의미로 쓴 거였다. 요조씨는 아마 더 고생했을 거다. 빗나간 칭찬이었으니까"라며 "제 앨범도 많이 팔렸고, 마지막 앨범이 2013년인데 뮤지션으로 낸 1, 2, 3집의 인세를 아직도 받는다는 건 누가 지금 제 노래를 듣는다는 거다. 시작부터 그냥, 쭉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진 거니까 저는 신에서 받은 게 많고 운이 좋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총대를 멘 건 자신이었으나, 여기저기서 애정 어린 도움을 받았다. 현재 전주에 사는 오지은은 "'영희페'는 카톡과 전화로 만들었다"라며 "딱 두 번" 했던 화상 회의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첫 번째 회의 때 분할 화면에 열 몇 명의 얼굴이 뜨는 걸 보는데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 그냥, 절경인 거예요! (웃음) 서로 '우와~ OO님이시다' '너무 팬이에요!'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왜 이런데도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이 없었을까… 아무튼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정말 많이 나왔어요."
소녀시대(Girls' Generation)의 '포에버 원'(Forever 1)과 '소원을 말해봐'(Genie)부터, 르세라핌(LE SSERAFIM)의 '스파게티'(SPAGHETTI), 뉴진스(NewJeans)의 '버블 검'(Bubble Gum), 롤러코스터(Roller Coster)의 '어느 하루'까지… '영희페' 출연진은 다음 '영희페'에 초대하고 싶은 뮤지션의 음악을 커버했다. 아직 1회지만 이것은 '영희페'가 자랑하는 '전통'이기도 하다.
오지은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한영애의 '누구 없소'와 '조율'을 불렀다. 한영애는 원래 올해 '영희페'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50주년 기념 단독 공연과 날짜가 겹쳐서 아쉽게 무산됐다. 오지은은 "내년에 나오시면 이미 기다리고 있던 관객이 있고, 그 관객은 놀랄 준비가 돼 있다. '누구 없소'를 부른 본체(한영애)가 등장한다? 이 모든 서사를 세상이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저는 솔직히 노래 안 하고 (한영애 무대를) 보고 싶다"라고 해 폭소를 유발했다.
다음 '영희페'를 기약하며 섭외하고 싶은 뮤지션 곡을 부르는 것, 이 또한 동료(들)의 아이디어다. 정성은, 원소윤 등 코미디언을 섭외하자는 건 요조의 제안이었다. 김사월은 '영희페'에 출연하면 좋겠다고 바란 동료 음악가(들)를 추천했다. "되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 크레딧 없이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다 한 게 아니에요. 멋진 일이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