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꽃꽂이와 풍금

[조중의의 가장자리톡]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이틀 응급실에 있다가 사흗날 병실로 입원했다. 질환의 시간 속에서는 저마다의 기억 상자가 열린다.

운 좋게 눈부신 태양일 수도 있고, 측은하지만 축축한 빗물일 수도 있다.  

일상 속에서 한 사람의 행위가 타인에게 고결하고 존귀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일이 있는데, 이는 흔치 않은 일이다.

내 기억 상자 속에서 그 여자가 뚜껑을 열고 나왔다.

그 여자는 야생화로만 꽃꽂이를 한다. 일요일 이른 아침, 산과 들로 나가 꽃꽂이에 쓸 야생화를 찾는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오늘은 망초꽃이네요! 와, 망초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어요"  

"세상에 미운 꽃은 없어요. 가만히 보면 꽃은 만물 가운데 뿌려 놓은 해독제에요. 꽃이 아니었으면 어쨌을까…"  

그 여자는 하얀 망초꽃 꽃꽃이를 예배당 단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 나온다.  

망초꽃이 빛나기 시작한다. 경건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보는 사람마다 그 속으로 빠져든다. 하나의 사물이 한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것이다. 딱딱해진 껍질을 빠져나온 누에처럼 의미를 찾아 멈춘 자리를 지나가게 만든다.

이 놀라운 심경의 변화가 그 여자의 손에서 비롯되었다.

이 장면을 두고 "신을 믿는 유신론자의 종교적인 믿음의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긍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가운데 "들꽃으로 만든 꽃꽂이를 보고 경이로움과 거룩함을 체험했다"는 고백을 듣는다.

정답은 없다. 자기 몫일 뿐이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찔레꽃, 강아지풀꽃, 토끼풀꽃, 생강나무꽃, 돼지감자꽂, 망개나무 열매, 코스모스꽃, 쑥부쟁이꽃, 원추리꽃, 구절초꽃, 부추꽃, 고들빼기꽃….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떨리도록 만드는 그 여자는 자기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놀라운 능력이 그 여자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타인에게는 기적이지만… 이 현상에 대한 이해 역시 각자의 몫이다.

그다음 기억 상자의 뚜껑을 열고 나온 여자는 풍수원 성당의 60대 신자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어느 가을날 강원도 횡성에 있는 이 성당을 찾은 적이 있다. 붉은 벽돌과 빛바랜 스테인드글라스, 기름칠로 반짝이는 나무 기둥….

마침 토요 저녁 미사가 시작됐다. 가을 추수기를 만난 신자들이 들에서 돌아와 옷을 추스른 채 허겁지겁 들어온다.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고는 기도를 한다. 그 모습이 먼 길을 날아온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공중을 바라보는 것 같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미사가 막 시작되려는데 그 여자가 등장한다. 머리카락에 풀씨 하나가 매달려 있다. 방금 전 세수를 했는지 목덜미 셔츠가 물기에 젖어 있다.

그 여자가 성당 오른쪽 벽에 놓여있는 풍금을 연다. 거친 숨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맴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연주가 시작된다.

'천상의 소리'라는 표현을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가을 저녁 깊은 산골짜기 성당을 울리는 풍금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불쌍히 여기소서!"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풍금 소리가 숨어 있던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내 구원을 청하며 지향할 수 있는 거룩함으로 이끈다.

그러나 풍금을 치는 60대의 산골 여자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 평범함이 누군가에는 사랑이고 감동이며 기적이 된다.

붉은 고추를 따던 손으로 풍금을 치는 그 여자는 그 순간 천사였다.

주저앉게 하고 비우게 만들었던 그 여자는 어쩌다 환상처럼 나타난다. 나를 잊어버렸을 때, 혹은 높아지려 할 때….

꽃꽂이와 풍금만으로도 반성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만들고 연주하는 지극히 평범한 손길에서 갈 길을 찾는다.

꽃꽂이와 풍금 소리에 마음이 진동하는 축복 역시 각자의 몫이다.

병실 창 너머 산은 한낮의 빛에 포로가 되어 고요하다. 오늘 낮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유월이지만 한여름이다.

질병이 곤고한 육체에서 한 걸음 먼저 내딛듯, 모든 은유가 시간을 앞서가듯….

언제쯤 퇴원하게 될까?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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