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남권에 800조원 규모의 기업 투자로 반도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을 조성한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단일 거점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천문학적인 투자가 추진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4기에 메모리 팹을 유지할 막대한 전력과 용수 공급, 인력 수급 등 인프라가 주요 과제로 지목된다.
"서남권에 800조 규모 4기 메모리 팹 구축"…대만 사례 주목
30일 정부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서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할 것"이라면서 "총 800조 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4기의 메모리 팹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김 장관은 "수도권 단일 거점만으로는 폭발하는 반도체 수요 대응이 어렵다"며 "전력, 용수 등의 한계로 현재 계획된 것 이상으로 확대하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역 거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우선 현재 수도권에 조성 중인 반도체 생산 거점을 조기 완성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평택 생산라인은 기존 5·6호기를 기존 순차 건설 방식에서 동시 건설로 전환한다. 용인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의 팹 완공 시점을 각각 7년, 12년 단축해 5년 내 메모리 생산 능력을 2배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번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대만을 성공 사례로 참고하고 있다. 대만 TSMC는 기존의 북부 신주과학단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남부 가오슝까지 생산거점을 성공적으로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장관은 SNS를 통해 "(대만) 남부 지역의 생산 비중이 북부를 넘을 정도로 성장하면서 반도체 경쟁력 강화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며 "신주와 가오슝의 거리는 약 230㎞로, 용인과 광주의 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로 전력 공급 될까…100만톤 물 공급 계획도 '물음표'
그러나 실제 대규모 반도체 공장 설립까지는 변수가 산적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요 변수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할지다. SK하이닉스가 용인에 건설 중인 반도체 팹의 경우 4개에 5.5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이는 원전 5기 정도의 규모다. 양뿐만 아니라 질도 문제다. 반도체 팹에는 24시간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일정한 전압과 주파수가 유지되는 전기가 필요하며 중간에 공급이 끊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전력 공급을 대충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국민보고회에서 "호남에서 생산된 전기가 이제는 호남의 반도체 팹을 움직이는 전기가 됐다"며 "서남권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6.3GW의 전력을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전력망을 기존 대형 발전소 중심의 일방향 체계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양방향 분산형 체계로 재편할 계획이다. 전기가 생산된 곳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전력망 체계를 보강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도 확대한다.
다만 재생에너지 전력의 경우 안정성과 균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호남에 한빛원전이 있지만, 6기 중 1기는 설계수명 종료로 가동을 멈췄고 나머지도 2034년까지 순차로 수명이 끝나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상태다.
호남의 취약한 송전망 인프라도 과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호남권 345kV 송전선로 13곳 가운데 12곳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수용 한계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송전망 확충이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 4월 반도체 클러스터에서의 전력공급 계획 관련 보고서에서 "도심 주변에 송전망 건설 반대 경향이 강한 비도시 지역이 있으면 최적 송전선로 경과지를 우회하게 될 수도 있다"며 "이는 전력망 구조 결정의 변수로 작용하고 안전도와 관련 있는 단락용량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반도체 팹에는 막대한 고순도의 물이 필요하다. 반도체 제조 공정과 공정 가스 정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세척 및 불순물 제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통상 반도체 팹 1기가 하루에 약 20만톤의 물이 필요하다.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SNS를 통해 "호남에도 영남이나 수도권만큼 물은 충분하다"며 "첨단도시 발전에 필요한 만큼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수자원을 제대로 배치·관리하면 하루 100만톤의 산업용수 공급도 가능한 것으로 검토됐다"고 적극 반박했다.
다만 정부의 제1차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연간 7억4천만톤의 생활·공업용수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특히 호남권인 영산강 권역에서 연간 7천만톤, 섬진강 권역에서 연간 5천만톤의 용수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정부의 구체적인 용수 공급 계획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당 인프라와 관련한 지역사회 갈등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당초 2022년 착공 예정이었던 용인 클러스터 1기 팹도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지난해가 돼서야 첫 삽을 떴다. 당시 안성시가 오폐수 유입 가능성에 반발하고, 여주시도 인허가 부담 등으로 난색을 보이면서 착공이 지지부진했다.
성공적인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서는 인재 확보와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 반도체 인력들이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호남까지 끌어당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 팹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유지보수 등 협력 업체 입주를 유도할 인센티브도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더스트리 이주완 분석가는 전날 YTN라디오에 출연해 "엔지니어, 고급 연구원들, 석박사는 사실 애초에 공장에는 거의 없고 (수도권) 연구소에 있다"며 "생산 라인과 연구개발이 완전히 절연이 되는 것. 연계성이 전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