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재정 상황이 파탄 지경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도지사직인수위원회 첫 현안회의에서 내놓은 일성이다. 대외 상황만 탓하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재정 악화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충북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같은 당 신용한 충북지사 당선인 인수위원회는 "도청 곳간에 알곡이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없다"며 지방채 추가 발행 가능성을 언급했다. 나아가 "모라토리엄과 유사한 상황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우회적으로 전임자를 겨냥했다.
민주당 박수현 충남지사 당선인 측 역시 올해 하반기에만 1조원 규모의 재정 운용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의힘 김태흠 충남지사는 "전임 도정 흠집 내기"라며 반발했다.
인천과 대전, 세종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 당선인들은 적게는 1조원, 많게는 수조원대 누적 채무를 이유로 전임자를 '탓'하며 재정 구조 개편 필요성을 제기한다.
확장재정 외치던 당선인들, 취임 앞두고 "곳간이 비었다"
새 단체장이 재정 상태를 살피는 일 자체는 온당하다. 실제로 경기 침체와 세수 감소로 상당수 지방정부가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까지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다만 유권자인 국민들이 물음표를 던지는 대목은 따로 있다. 비판의 주체가 다름 아닌 '재정 확대'를 전면에 내세워온 민주당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 회복을 위해 국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빚을 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확장재정론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적 경제철학이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의지에 따라 정부는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민주당 후보들도 선거 과정에서 지역화폐 확대, 복지 강화, 민생 지원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 재정으로 국민 삶을 보듬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표정이 달라졌다.
당선 직후에는 지역화폐 확대도, 복지 강화도 아니었다. "곳간이 비었다"는 하소연이 잇따른 것. 재정난과 빚 규모를 부각해 향후 정책 추진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데 힘을 쏟는 모양새다.
물론 국가 재정과 지방 재정은 다르다.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정부는 재정 운용의 제약이 크고 자체 세입 기반도 제한적이다. 국가채무와 지방채를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다.
투자인가 파탄인가…재정 철학의 일관성을 묻다
그럼에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의문이 남는다.확장 재정을 경제 회복을 위한 투자라고 본다면, 전임 지방정부의 채무 역시 그 철학 안에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반대로 채무 증가가 심각한 문제라면 선거 당시 자신들이 제시했던 재정 확대 공약 역시 그 부담을 함께 설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재정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개념이 아니다. 내가 쓰면 투자이고, 남이 쓴 돈은 재정 파탄이라고 규정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향후 공약 이행 과정에서 재정 부담을 설명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공약 이행이 늦어지거나 조직 신설, 신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릴 경우를 대비해 미리 전임 지방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전임 단체장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백년대계를 명분으로 채무를 늘렸다면 그 효과와 재정 건전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재정 운용은 결국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새로운 지방정권이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 더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보다 정책적 철학의 '일관성'이다.
확장 재정을 주장할 때는 부채를 투자라고 설명하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같은 부채를 재정 파탄이라고 규정한다면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선인으로서 재정 현실을 말할 수는 있다. 단 그 현실 진단이 자신들이 선거 기간 내내 강조해온 재정 철학과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선거 때 재정 확대를 약속하고, 끝난 뒤에는 재정난을 이유로 전임자를 비판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유권자들은 위기의식에 공감하기보단 헷갈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궁금한 것은 곳간이 얼마나 비었느냐가 아니다. 그곳에 어떤 정책과 비전을 담을 것인지, 그리고 그 약속을 어떤 재정 철학으로 실현할 것인지다.
국민적 신뢰 없이는 재정은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 정치가 바뀌어도 재정 원칙만큼은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