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투자액만 800조…'삼전닉스 메가투자' 순항 관건은

이재용·최태원, 호남 팹 신설 골자로 대규모 지방 투자 계획 발표
이재명 대통령 "청와대 안에 직할 담당관 두고 직접 사업 챙길 것"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과 SK그룹이 호남권 반도체 공장 신설에 80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초대형 지방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AI 확산에 따라 초호황기를 맞은 이들 기업이 반도체와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와 관련해 호남 뿐 아니라 충청, 영남권을 아우르며 장기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힌 액수는 1500조 원이 넘는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 균형 발전 기조에 발 맞춰 이뤄진 이번 천문학적 투자액 발표가 '용두사미'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현재 조성 중인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순항은 물론 지방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가 약속한 적극적 정책 지원이 꼼꼼하게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호남·충청·영남에 1500조 넘는 투자 계획 발표

삼성과 SK그룹이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밝힌 중장기 지방 투자 규모는 총 1558조 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약 58.5%에 해당하는 액수다.
 
관심을 모았던 호남 지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400조 원씩 투입해 전공정 팹(반도체 공장) 각 2기씩 총 4기를 구축하기로 했다. 삼성은 해당 팹 신설 후보지를 '광주'로 발표하며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수도권과 함께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양대 핵심 클러스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반도체 전공정 팹이 수도권 외 지역에 추진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도 "서남(호남)권 클러스터는 이천, 청주, 용인에 이은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메모리 생산(전공정)을 중심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양사는 충청권에도 반도체 생산 능력 강화에 총 156조 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충남 천안·온양에 56조 원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팹 구축을 추진하며, SK하이닉스도 100조 원을 투입해 충북 청주에 신규 낸드 팹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호남과 충청권을 잇는 신(新) 반도체 벨트 구축에 계획된 투자액만 따져도 956조 원이다. 이밖에도 삼성은 AI데이터센터(AIDC), 디스플레이 생산 기지 구축, 휴머노이드 로봇 라인 구축 등 계획을, SK그룹은 전국 각지에 AIDC 신설 구상을 각각 내놨다. 이를 모두 포괄한 양사의 지역별 투자 계획 규모는 호남권 896조 원, 충청권 392조 원, 영남권 270조 원으로 파악됐다.

호남에 800조 규모 '삼전닉스' 팹 신설…수도권 팹 완공 시점도 앞당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사가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중심으로 이처럼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은 AI 기술 고도화에 따른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 폭증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AI 모델의 기술적 두뇌 역할을 하는 AIDC에 대한 글로벌 투자는 작년 4660억달러(약 720조 원)에서 2030년 3조 3790억달러(약 5217조 원)로 약 7.2배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투자 확대는 AI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양사는 이미 추진 중인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 시점도 앞당겼다고 이번에 밝혔다. SK하이닉스의 용인 일반산단 팹 4기 완공 시점은 당초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 삼성전자의 용인 국가산단 팹 6기 완공 시점은 2047년에서 2040년으로 7년 단축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생산라인도 기존 목표보다 3~4년 일찍 완성할 계획이다. 이 시간표대로 진행되면 5년 내 양사의 메모리 생산 능력은 2배 확대될 전망이다.
 
일각에는 수도권 클러스터도 현재 진행형이고, 반도체 초호황기가 2030년 이후까지 지속될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는 정부에 떠밀려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계획부터 일단 약속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호남권에 팹 신설을 추진했다가 업황이 나빠지면 기업들이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견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미래에 필요한 메모리 기술과 그에 맞춘 팹 조성 계획 등이 이번에 세밀하게 제시되지는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생산 능력 늘려야" 공감대…"용인 성공·호남 인프라 구축 선행돼야" 조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반도체 시장 환경이 기존처럼 일정 기간을 두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에서 벗어나서 구조적 성장기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포화 상태인 수도권 외 지역으로 반도체 생산 지도를 넓히는 건 불가피하다는 진단은 투자 주체들로부터도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국민보고회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기술 패러다임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폭발적 수요에 대응하기 부족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같은 자리에서 "용인과 청주 팹 건설을 앞당긴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메모리) 공급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생산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사는 공통적으로 호남 지역을 제 2의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인프라 구축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번 계획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일단 조성 중인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부터 본 궤도에 올리는 한편 정부는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약속한 반도체 인프라 구축 지원 선행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온다.
 
사진은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한 반도체 학계 교수는 "SK그룹은 용인 일반산단이 2030년대초까지 어느정도 완성되고, 삼성도 용인과 평택사업장이 계획대로 추진돼야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며 "거기서 이익이 나와야 새로운 투자 여력도 더 생기는 만큼, 수도권 클러스터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용인 클러스터가 성공해야 호남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인력, 전력, 용수 등 인프라가 구축되면 기업은 수요 상황에 따라 빠르게, 혹은 조금 천천히 팹을 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영현 DS부문장 겸 부회장도 국민보고회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투자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원스톱 행정 지원이 절실하다"며 "전담부서가 이를 도맡아 용인 산단을 포함해 관련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준다면 기업에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 생산 시설이 들어선 적 없는 호남 지역에서 팹 운용 인력들을 끌어모으는 것도 기업들의 난제로 거론되지만, 생산 팹은 연구개발(R&D) 팹과 달리 인력 부담이 덜해 정부가 약속한 교육 등 정주 여건 개선 작업이 착실히 이뤄지면 우려가 해소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편 이번 투자를 "대한민국 대도약의 전환점"이라고 밝힌 이 대통령은 전폭적인 정책 지원을 약속하며 이재용·최태원 회장을 "국민 영웅"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이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증명했다"며 이들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직접 직할 담당관을 두고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제가 직접 챙기고 신속하게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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