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정치인과 재계 인사를 향한 경찰 수사가 표류하면서 경찰의 특수 수사 역량에 대해 여러 뒷말이 나온다. 11개월째 진행 중인 무소속 김병기 의원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하이브 방시혁 의장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두 차례나 퇴짜를 맞고도 사건을 종결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 수사팀은 애초 김 의원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조였다. 확보한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차남의 숭실대 편입 및 중소기업 취업 특혜 의혹에 대한 김 의원의 관여 정도가 구속 사안에 해당할 만큼 중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김 의원이 직접 숭실대 총장 등을 면담하고 계약학과 입학 요건에 맞는 업체와 직접 소통한 사실, 이후 채용과 편입이 실제로 이뤄진 점 등을 토대로 제3자 뇌물죄 적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김 의원이 자신의 보좌진이나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을 상대로 '김 의원의 결백을 뒷받침하는 취지'의 사실 확인서를 받아 제출한 정황도 수사팀은 증거인멸 우려를 키우는 대목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한때 김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4월 "김 의원과 관련해 일부 혐의는 유무 판단이 가능한 수준까지 수사가 진행됐다"며 "해당 의혹들에 대해서는 먼저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거북이 걸음을 반복했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8일 "여러 의혹 중 일부에 대한 1차적 결론을 서울청이 갖고 있었지만 국수본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판단하는 부분이 있어 추가 수사를 지휘했다"고 말했다. 최근 박 청장도 "때가 되면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라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김 의원이 김경 전 서울시의원으로부터 '돈이 든 쇼핑백을 받은 것 같다'는 취지의 법정 증언이 나오고, 경찰이 관련 내용을 관계인 조사를 통해 이미 확보한 사실까지 알려졌지만 미온적인 태도는 여전하다. 서울경찰청 관계자가 '김 의원에게 쇼핑백을 건넨 사실만 가지고는 수사에 착수하기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김 의원과 그 주변에 대한 수사는 애초 부실 논란 속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9월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시작한 관련 수사는 김 의원의 여러 행적이 언론에 잇달아 보도되기 전까지는 좀처럼 가시적인 진전이 없었다. 올해 1월 김 의원 사건들이 서울경찰청으로 옮겨졌는데도 지루한 공방 속에 수사는 하세월이다.
수사가 늘어질수록 사건 관계인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김 의원 고소인 측은 최근 경찰에 접수한 수사 촉구서에서 "경찰이 명백히 수사를 지연·방치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생업에 곤란을 겪고 최근까지도 정신과 진료를 받는 등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항의했다.
경찰은 "의혹만 13개에 달할 정도로 수사할 내용이 방대하다"고 사건 장기화 배경을 해명한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 해명 자체가 특수수사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수많은 의혹 중 입증 가능성이 높고 중대한 '핵심 혐의'를 빠르게 압축해 강제수사와 관련자 조사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것이 특수수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정작 피의자인 김 의원은 지난 4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구속영장이 신청될 리 있겠느냐"고 반문했고 '수사기관이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경찰은 같은 달 방 의장의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는 협조 공문을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받은 직후 방 의장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두 번이나 검찰 단계에서 영장이 꺾이며 체면을 구겼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찌르되 비틀지 않는다'는 말처럼, 핵심 범죄 혐의를 정확히 겨냥해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것이 특수수사의 핵심"이라면서 "불필요하게 주변 의혹을 늘어놓기보다 중대한 혐의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신병확보 등 수사 갈래를 정했어야 했다"라고 말꼬집었다.
다른 검찰 출신 법조인은 "권력자 수사가 장기화할수록 신병확보는 어려워진다"라며 "몇 달 동안 수사기관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는데 법원이 이제 와서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느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뚜렷한 진전 없이 법리 검토만 반복하며 강제수사 여부조차 결론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 되풀이된다면 수사기관으로서의 신뢰와 권위에도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