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 종주국 일본에서 못 다 이룬 꿈을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선수가 있다. 일본 여자 국가대표 출신 하야시다 리코(순창군청)다.
하야시다는 29일 전북 순창군 다목적정구장에서 끝난 '2026 순창오픈 종합정구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다. 일반부 여자 단식과 혼합 복식을 제패했다.
여자 단식은 3년 연속, 혼합 복식은 2년 연속 우승이다. 하야시다는 지난달 동아일보기에서도 여자 단식과 혼합 복식 2관왕을 달성했고, '2026 순창 춘계한국실업연맹전'에서도 단식 정상에 오른 상승세를 이었다.
하야시다는 이번 대회 단식 결승에서 김예솔(NH농협은행)을 게임 스코어 4-2로 잡았다. 혼복 결승에서는 이요한과 짝을 이뤄 배이수(이상 이천시청)-노은지(안성시청)를 5-2로 제압했다.
이요한은 팀 동료 백경훈과 나선 남자 복식 결승에서 후네미즈 하야토-아다치 센(이상 일본)에 4-5로 진 아쉬움을 달랬다. 배이수는 남자 단식 결승에서 정영우(군산대)를 4-2로 누르고 2년 만에 정상 탈환을 이뤘다.
경기 후 하야시다는 "국제 대회인 오픈 경기라 국내 대회보다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서 "평소보다 준비도 더 많이 하고 마음도 강하게 먹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옥림 순창군청 감독은 "하야시다가 같은 일본 동료들이 나온 만큼 더 우승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일본 국가대표 출신인 하야시다는 순창군청 소속으로 국내 대회를 뛴 지 3년째다. 2024년부터 여자 단식과 혼복 등 우승만 15번이 넘을 만큼 한국 무대를 평정했다. 김 감독은 "워낙 재능이 뛰어난 데다 영리하고 파워스트로크, 게임 운영 등 두뇌 플레이가 놀랍다"면서 "남자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데 그만큼 훈련과 노력의 결과가 나오고 있는 만큼 우리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도 본받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사실 하야시다는 일본에서 선수 은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번뇌의 시간을 보냈다. 하야시다는 "일본 국가대표였고, 한국보다 대회도 많았는데 일본에서는 우승해도 대우가 좋지 않았다"면서 "운동이 좋았지만 보상이 없어 대학교 2학년 때 번아웃이 왔는데 3, 4학년 때는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운동을 쉬었다"고 돌아봤다.
일본은 정구 종주국이지만 한국처럼 실업팀이 활성화하지 않아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하기 어렵다. 정구 관계자는 "일본 실업 선수들은 일반 직장인처럼 근무하고 일과 시간 이후 운동을 하는 시스템"이라면서 "보수도 적어 근무와 운동을 병행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하야시다가 대학 이후 미래를 고민했던 이유다.
그러던 중 하야시다는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2023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하야시다는 "다른 걸 해보고 싶었는데 해외에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었다"면서 "건국대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구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었다. 하야시다는 "건국대가 있는 서울 광진구 정구 동호회에 일본 분들 있었는데 함께 운동하자고 권유해 동참하게 됐다"면서 "그러다 동호회에서 대한정구협회로 내 소식을 전하면서 실업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좋은 인연이 생겼다"고 밝혔다.
한국 생활은 만족스럽다. 한국 정구 메카로 꼽히는 순창군청은 성적에 걸맞는 대우를 하야시다에게 해주고 있고, 상금과 포상금도 쏠쏠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생인 하야시다는 "30살까지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 연인과도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다만 국제 대회 출전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 하야시다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금메달과 여자 복식 은메달 등 일본 대표로 입상한 경력이 있다. 다만 한국에 머물고 있는 현재로선 오는 9월 나고야-아이치아시안게임에는 출전할 수 없다.
하야시다는 "언젠가는 아시안게임에 다시 출전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개인 자격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설 수 있다면 꼭 출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좌절할 뻔한 정구 인생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하야시다의 마지막 꿈이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