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출범을 앞둔 부산 기초단체들이 곳간이 빈 채 출항하게 됐다. 대부분 전임 단체장 시절 예산을 대규모 지출하면서 생긴 일로, 신임 단체장들은 공약 이행은커녕 당장 빚부터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1일 부산 지역 16개 구·군에 따르면, 상당수 지자체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순세계잉여금'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세계잉여금은 한 회계연도 결산 이후 남은 잔액 가운데 다음 연도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다. 통상 단체장이 교체되는 시기에는 후임 단체장이 안정적으로 구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재정 여력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산 상당수 기초단체에서 순세계잉여금이 크게 감소해, 결과적으로 신임 단체장들이 취임과 동시에 긴축 재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역대급 재정 펑크'에 사업 축소·구청 건물 매각도 검토
가장 부담 규모가 큰 곳은 부산 사하구다. 사하구 순세계잉여금은 2024년 192억 원에서 지난해 결산 기준 85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당장 사하구가 올해 감내해야 할 세입 대비 부족한 예산은 18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사하구는 주민 체감도가 낮거나 당장 급하지 않은 사업을 검토해 축소할 방침이다. 또 구청 소유 유휴 건물을 민간에 매입해 세입을 강제로 늘리는 방안까지 고심할 계획이다.사상구는 올해 본예산을 편성하면서 순세계잉여금을 250억 원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결산에서는 149억 원으로 집계됐다. 예상보다 101억 원이 부족해 사상구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삭감해 편성할 계획이다. 사상구는 전임 구청장 시절 추진된 '삼락생활복합문화센터'와 '엄궁생활문화센터 건립' 등 대규모 사업에 6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되면서 순세계잉여금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동구도 전임 구청장 시절 대규모 하드웨어 사업을 추진한 탓에 후임자에게 빚더미를 물려주게 됐다. 동구는 민선 8기 시절 좌천초등학교 부지에 '좌천 주민 활력 어울림파크'를 조성하는 등 대규모 하드웨어 사업을 추진하면서 99억 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지자체가 일반회계나 특별회계에서 남는 돈을 비상금으로 모아두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도 500억 원에서 189억 원 수준으로 대폭 감소해 구정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남구는 2022년 민선 8기 출범 당시 결산 기준 1004억 원에 달했던 순세계잉여금이 지난해 289억 원으로 3년 만에 70% 이상 급감했다. 통합재정안정화기금도 2023년 400억 원 규모에 달했지만 민선 8기를 거치며 현재 250억 원 규모로 감소한 상태다. 민선 8기 시절 추진된 가족센터와 고동골 복합시설, 대연5동 행정복지센터 등 대규모 건립 사업에 구비 투입이 예정돼 있어 앞으로도 재정 부담은 이어질 전망이다.
다른 구·군 역시 재정 여력이 부족하다. 북구 순세계잉여금은 2023년 576억 원에서 올해 297억 원으로 3년 만에 49% 감소했다. 기장군도 같은 기간 78% 줄었고, 대형 건설 사업을 여럿 추진한 강서구도 2023년 274억 원에서 올해 114억 원으로 재정 여력이 악화한 상태다.
당혹감 못 감추는 새 집행부 "곳간부터 다시 점검"
이에 신임 기초단체장들은 취임과 동시에 재정 여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첫 과제로 떠안게 됐다. 특히 국민의힘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뒤 차별화된 공약 사업으로 성과를 내려 했던 지역에서 곳간이 바닥을 보이는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나자, 당선인이나 인수위원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서태경 신임 부산 사상구청장은 "구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삭감 추경을 진행한다고 하고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고 해 당혹스럽다. 인수위원회에서 재정 상황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석 부산 사하구청장 인수위원회 관계자도 "민선 8기(전임 구청장) 출범 당시에는 후임 구청장이 재정 적자를 떠안지는 않았다. 새 집행부가 출범과 동시에 재정 확보부터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재범 부산 남구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민선 7기 마무리 당시 970억 원 규모 재정 여력을 남겨줬는데 현재 재원이 거의 소진된 상태라 신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민선 8기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재정 여건이 크게 달라져 재원 마련 방안부터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