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대 공기 마시고 숨쉬어야"…그렇게 탄생한 '멋진 신세계'[EN:터뷰]

지난달 20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제공

마지막 회에서 11.8%(닐슨코리아 기준)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둔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는 조선 시대와 21세기 한국을 오가는 사랑 이야기를 펼친 '로맨틱 코미디 판타지'였다.

희대의 조선 악녀 영혼이 씌어 '악질'로 변한 무명 배우 신서리(임지연)와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악질 재벌 차세계(허남준)의 일촉즉발 전쟁 같은 사랑을 그린 '멋진 신세계'. 드라마의 뼈대는 판타지에 기댔으나, '멋진 신세계' 속 인물은 제작진의 세심함과 꼼꼼함으로 '이 땅 위에 발붙인' 현실성도 갖췄다.

이는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강현주 작가의 생각에서 나온 결과였다. "드라마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함께 숨 쉬어야 한다"라는 소신을 지닌 강 작가는 이미 선례가 많은 타임슬립물의 통과 의례를 과감하게 건너뛰고,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다가갈 수 있게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스토브리그' 조연출로 시작해 '치얼 업'으로 정식 데뷔하고, 두 번째 작품으로 '멋진 신세계'를 연출한 한태섭 감독은 이 작품이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어야 했다"라고 운을 뗐다. 주연인 임지연과 허남준을 중심으로 다양한 캐릭터의 조합, 대비, 상성 등을 고려해 "전체적인 앙상블"에 신경 썼고, 역시나 "진짜 같음"을 추구했다.

CBS노컷뉴스는 '멋진 신세계'의 강현주 작가와 한태섭 감독을 지난달 30일 서면으로 만났다. 인터뷰는 공통 질문 4개(종영 소감/인기 비결/집필과 연출 주안점/배우들 작업 소감)를 제공하고 매체 개별 질문 4개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멋진 신세계'에서 신서리, 강단심 역을 연기한 배우 임지연. '멋진 신세계' 제공

1. '멋진 신세계'가 국내외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강현주 작가 : '멋진 신세계'를 집필하며 임했던 태도를 솔직하게 토로하면, 스스로 보고 싶은 서사와 인물을 마음껏 썼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이 이야기를 사랑해 주셔서 뭉클할 따름입니다. 신인 작가로서 계속 이렇게 이야기를 꾸려 나가도 되겠다는 신호를 받은 기분입니다. 마치 어두운 밤바다 위를 홀로 표류하다가 등대의 한 점 불빛을 만난 것처럼 안도가 됩니다. 이 빛을 따라가면 뭍으로 향할 수 있겠다는 작은 확신을 시청자분들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태섭 감독 : 국내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려 노력했는데, 해외에서도 이렇게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국내외 시청자분들께 무한한 감사와 더불어 추운 겨울 오랫동안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작은 보상이 된 것 같아 안도감이 듭니다. 시청자분들 반응 중에 투병 중인데, 녹록지 않은 현실에 힘들다가도 이 드라마 덕분에 웃음이 터지고 하루하루 버틴다는 말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되어 뿌듯하고 행복한 기분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습니다.

2. '멋진 신세계' 연출/집필에 있어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강현주 작가 : 드라마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함께 숨 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대성과 현실성에 주안점을 두고자 노력했습니다. 판타지라는 장치를 통해 과거의 인물을 현대로 소환하는 서사가 자칫 공중에 붕 뜬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에, 최대한 개연성 있게 그려지길 바랐습니다. 이미 많은 선례가 있는 타임슬립물의 익숙한 통과의례들은 과감하게 건너뛰고 추진력을 살리는 데 집중했던 이유입니다. 이를테면 오프닝 시퀀스를 인물의 전생사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사약 신으로 시작하거나, 현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코미디를 최대한 지양한 점이 그렇습니다. 서리라는 인물이 과거에서 왔으나 명민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서사 위에 서는 것이 지금 시청자의 정서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이 인물이 시청자분들께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다가가길 바랐습니다. 어떤 설정의 집합체라기보다 살아있는 인물로 스며들기 위해선 입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下)남자 중의 상(上)남자, 누구보다 MZ한 조선여자,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내면엔 얼음조각을 숨긴 연약함. 이런 대치되는 지점이 인물을 사람답게 보이게 한다고 봤습니다. 사람이란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부박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합니다. 문도(장승조)가 타인에게 비정하지만 아들에겐 애틋하듯, 이해타산만 따지는 것 같은 홍 대표(백지원)가 서리의 아픔은 감춰줬듯이 말입니다. 이런 다면적인 모습을 녹여 인물들이 정말 어딘가 살아 숨 쉬고 있을 거라고 시청자분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봐주신 후 '그래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했습니다. 사실 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과 서사로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메시지나 주제라고 정의 내리고 싶진 않지만, 결국 그렇게 느껴 주십사 했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있기에 기쁨도 행복도 느낄 수 있는 생이란 값진 것이라고, '그러니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이 삶을 살아가 보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멋진 신세계'에서 차세계, 이현 역을 연기한 배우 허남준. '멋진 신세계' 제공

한태섭 감독 : 캐스팅과 작품의 리얼한 톤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대본의 난도가 높아 캐스팅이 너무나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조선시대와 대한민국 두 타임라인을 오가는 서리 캐릭터의 감정선이 복잡했고, 서리와 세계 캐릭터는 개성이 강한 코미디와 설레는 로맨스, 절절한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어야 했습니다. 두 인물 간 케미스트리는 말할 것도 없고요. 다행히 작가님과 제가 가장 원하던 남녀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고, 악역의 경험, 사극 경험이 어우러진 두 주인공의 완벽한 캐스팅을 이룬 직후 작가님과 '이건 됐다!' 쾌재를 부른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두 배우를 중심으로 다른 조연 캐릭터들과의 조합, 대비, 상성 등 밸런스를 꼼꼼하게 따져가며 전체적인 앙상블을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멋진 신세계'는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작품이 건드리는 주요 감정들은 원천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희로애락이었기에 자칫 이야기가 가짜 같다는 인상을 주면 시청자의 감정이입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로 작품을 한정 짓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진짜 같음'을 추구했습니다.

우선 사극 파트의 리얼리티가 중요했습니다. 단심(임지연)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기도 하고, 서리의 감정선에 따라 시점이 순식간에 조선시대로 옮겨가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극 파트는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따라서 의상, 미술, 소품, 로케이션 등 최대한 격조 있고 절제된 조선 후기의 미학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연기의 디렉션도 배우들끼리 주고받는 감정과 미묘한 호흡, 리액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연출자로서 디테일한 주문을 하기보다는 배우들의 자유로운 해석과 과감한 표현에 맡겼습니다. 캐스팅된 연기자들이 워낙 실력이 출중해 믿음이 있었고 저는 그저 약간의 톤 조절과 그들의 자생적인 케미가 발전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마련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재미있게 보면서 자란 2000~2010년도 SBS 수목드라마의 대중적인 정서와 재미를 2026년에 금토드라마에서 다시금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왼쪽부터 '멋진 신세계' 한태섭 감독, 배우 허남준. '멋진 신세계' 제공

3. '멋진 신세계'는 21세기인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남녀 주인공에게서도 기존의 클리셰를 비트는 설정이 꽤 들어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의 악녀였던 강단심이 현대로 오고 나서 초반에는 남자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펼치고 살겠다고 하는 것이나, 안하무인인 차세계가 사랑에 빠져 신서리에게 직진하지만 거절당해도 이를 받아들이고 자기감정을 과도하게 강요하지 않는 것 등이요. 두 캐릭터를 만들면서 작가님이 신경 쓴 부분, 또 이를 화면에 잘 담기 위해 감독님이 노력한 부분이 듣고 싶습니다.

강현주 작가 : 일부러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를 비틀어야겠다고 접근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재미있게 이야기를 펼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의외성으로 그려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서리는 한눈에 선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아닌,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생존의지가 강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 욕망이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힘으로 보였으면 했습니다. 강희빈으로서 사약을 받고 죽은 상황을 생각하면 비혼이라는 선택은 인물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차세계 역시 겉으론 위악을 떨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에 솔직하고 책임감도 강한 합리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여자주인공이 사랑에 빠질 만한 남자주인공은 재벌 남주로서 판타지를 제공하는 인물보다는, 애절한 진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점에서 서리를 이사하게 해 주는 대신 서리가 좋아하는 탁 트인 옥상에 조명을 달아주는 차세계의 모습을 시청자분들이 좋아해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침없이 직진하는 설렘을 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묵묵히 기다려줄 줄 아는 배려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분들의 보편적인 연애 정서와도 따뜻하게 맞닿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지점들은 강한 의도를 갖고 집필했다기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서 대부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한태섭 감독 : 작가님의 설계이기도 하지만, 두 캐릭터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코미디'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차별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서리 캐릭터의 '냐냐냐밈'과, '서리시대'의 드롭킥이나, 5부 엔딩의 감전 신입니다. 이 코믹 신을 진짜처럼 성공시키는 것이 클리셰를 비틀고 이야기적 재미를 풍성하게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이 드롭킥으로 악당을 때려잡는 작품은 그동안 없었고 앞으로 제 연출 인생에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들도 코미디에 진심이어서 다행히 마음을 맞춰 화면에 잘 담아냈습니다.

악당을 때려잡는 신서리의 모습. '멋진 신세계' 제공

차세계는 근래 로맨틱 코미디 남자 캐릭터에 없는 악당처럼 섹슈얼한 텐션과 하찮고 귀여운 모습이 공존하는 매력이 잘 설계돼 있었습니다. 이 두 모순적 특징을 촬영할 때 그럴싸하게 섞고 매끄럽게 연결 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화를 버럭버럭 지르면서도 여성 시청자들이 보기에 너무 거칠고 위협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미묘한 톤이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꽃 야차 신에서도 꽃으로 맞대응을 하기 전에 이미 충분히 야자잎으로 맞은 후의 억울함과 당황함을 충분히 보여줘야 했고, 꽃으로 때리는 액션도 너무 타격감이 크지 않게 방어에 가까운 공격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거친 공격성보다는 성격적으로 까칠하고 예민하면서도 하찮고 귀엽게 보이는 톤이 중요했습니다. 허남준 배우의 서늘한 외형과 애교 많은 부드러운 성격 덕분에 표현에 큰 어려움은 없었고(오히려 너무 애교가 많아서 덜어내느라 힘들었습니다), 하찮고 허술한 부분은 제 취향이 많이 섞였습니다. 드라마 팬들이 차세계를 '햇살광공'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의도한 바가 잘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4. 현대와 조선을 넘나들며 다양하게 풀어가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후반부에는 이른바 '고구마 전개'로 아쉽다, 많은 이야기가 다소 성기게 풀린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현주 작가 : 현대와 조선을 오가는 운명적 상황에 어떻게 얼마나 몰입하게 할까를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모든 설정과 사건을 대사로 설명하기보다 인물들의 선택과 관계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데 무게를 두고자 했습니다. 작품이 완결된 이후 보내주신 다양한 해석과 피드백을 보며, 창작자의 의도가 관객의 시선과 만났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시청자분들이 서사를 받아들이고 교감하는 방식에 대해 창작자로서 한 번 더 깊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서사적 선택에 대해 보내주신 다양한 목소리 또한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귀한 의견이라 생각하고 마음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한태섭 감독 : '멋진 신세계'의 중후반에 대한 다양한 평이 있는 것은 대본보다는 연출적인 선택과 집중에 따른 반응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본은 어느 회차건 '인생이 고되더라도 한 사람의 온기가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는 성장과 구원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해 왔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조건으로 제한된 제작 여건, 분량 등의 이슈가 다소 있었고 연출자로서 갈등의 규모나 논리적 개연성, 사이다적인 복선 회수에 집중하기보다는 작품을 관통하는 이 주제를 솔직하고 용기 있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서리와 세계의 감정선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게 표현된 회차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분량상 편집된 신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아직 신인 연출자라 어떤 회차나 장면들은 작가님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부족함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함께했던 제작진분들은 최선을 다해주셨고 당시에 처한 극한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시청자분들의 의견과 감상 또한 겸허히 수용하고 있습니다. 시청자의 기대감이 창작자의 초기 의도와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이 또 당연할 수 있음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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