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연기의 기술이나 몰입으로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걸 모든 팀들과의 케미를 통해 알게 된 거 같아요. (…) 같이 만들어 가는 분위기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저에게 많이 남았던 거 같아요, 좋은 표본과 예시로."
최근 진행한 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 주인공 차세계 역 배우 허남준 라운드 인터뷰 당시, 허남준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낸 이들의 수고를 언급하며 이 모든 것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상기했다.
신서리(임지연)와 차세계(허남준)가 조선 시대와 21세기를 넘나들며 펼치는 로맨틱 코미디 판타지 '멋진 신세계'는 대본, 연출, 연기, 음악 등 드라마를 이루는 요소가 서로 잘 녹아들며 어우러져서 팬들 사이에서 '조별 과제 희망편'이라는 호평을 들은 바 있다.
지난달 30일, CBS노컷뉴스와 서면으로 만난 '멋진 신세계'의 강현주 작가와 한태섭 감독 역시 이 드라마가 '모두의 노력'으로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의미 있게 바라봤다. 인터뷰는 공통 질문 4개(종영 소감/인기 비결/집필과 연출 주안점/배우들 작업 소감)를 제공하고 매체 개별 질문 4개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문일답 이어서.
1. 허남준씨는 라운드 인터뷰 당시 '손목 키스' 장면이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제작진도 어리둥절했다고 하는데, 이 장면 외에도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던 장면이 있나요? 아니면 '이건 좋아해 주시겠지' 했는데 기대한 대로 반응이 돌아온 장면을 설명해 주셔도 됩니다.
강현주 작가 : 손목 키스신의 실시간 반응이 놀라웠는데, 그만큼 놀라웠던 순간은 9회 옥상 엔딩 신이었습니다. 서리와 차세계가 격렬하게 싸운 끝에 서리의 어깨에 기대는 장면인데, 실시간 반응이 손목 키스신만큼이나 커서 놀랐습니다. 모든 감정 신은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집필하고자 했는데, 이 어깨에 기대는 신 또한 그 상황에 몰입했을 때 차세계의 감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장면이었습니다.
시시각각 온갖 감정에 흔들리는 남자가 한 여자 앞에 무너지면서도 결국 포용하는 상황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어깨에 기대는 행동에 담았는데, 시청자분들께서 그 마음을 읽어 주시고 많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엔딩 신은 지문과 대사가 배우님의 살아 숨 쉬는 눈빛과 감정, 감독님의 섬세한 연출과 만나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태섭 감독 : 의외는 아니지만 걱정했던 장면은 차세계가 문도의 리조트 행사에 등장해 빙글 도는 '탕아 스타크' 신입니다. 당시 두 버전으로 촬영이 되었는데 편집 단계에서 차세계를 빙글 돌게 할 것인지, 그냥 담백하게 손만 펼칠 것인지 고민이 되어 허남준 배우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다는 배우의 해석과 직감을 믿고 '이쯤 회차가 되면 다들 세계를 사랑해서 이 정도는 먹힐 것이다'라는 생각에 빙글 도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심 걱정이 됐는데, 방송이 나가보니 생각보다 그 '탕아턴'을 좋아해 주셔서 의외였습니다. "차세계 너 이 녀석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회 초반 강아지 감자가 등장하는 장면은 감자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해 주셔서 자신 있었습니다. 만약 작품이 잘 안되면 강아지 장르 전문 연출로 선회를 해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서리시대'도 확신이 있었고, '쌍심지 신'도 찍으면서 혼자 킥킥대며 세계의 질투 버럭 연기를 분명 좋아해 주실 거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2. 임지연-허남준 등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들려주세요.
강현주 작가 : 임지연 배우님은 이 드라마의 심장이자 동력이었습니다. 일단 임지연 배우님이 와 주셨기에 드라마가 엔진을 달고 출발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서리와 이 작품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한겨울 강행군의 촬영이 진행되는 중에도 메신저로 장면 하나, 대사 한끝을 고민하며 작가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인데 이렇게 치열하고 진심이구나, 깊게 파고드는 모습에 작가로서 행복했습니다.
허남준 배우님은 로맨틱 코미디인 이 작품의 성패 그 자체였습니다. 차세계라는 캐릭터도 서리만큼 난도가 높은 인물인데, 그 복합적이고 변화무쌍한 매력을 정확히 조준하고 명중시켰습니다. 집에서 본방을 시청할 때 느낀 건 저 사람이 차세계란 배역에 빙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눈빛과 표정은 연기로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어서, 허남준이 아닌 차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차세계를 아예 허남준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첫 작품에서 이렇게 실력과 인품까지 완벽한 배우 두 분을 만난 것은 작가인 저에게 '오뉴월의 서리'와 같은 기적이었습니다. 신서리와 차세계를 가슴 깊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태섭 감독 : 우리의 주인공 임지연 배우는 '멋진 신세계'의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임지연 배우는 가혹한 날씨와 살인적인 스케줄, 압도적인 분량이라는 풍파에 맞서 시공을 초월하는 기적 같은 연기로 캐릭터와 주제를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차력 쇼'를 요구하는 코믹, 멜로, 액션 등 난도 높은 장면들에 스스로를 마음껏 내던지고 신인 연출의 디렉션도 모두 다 수용하여 해내는 모습을 보고 연기자로서의 감탄을 넘어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존경이 샘솟았습니다.
하루는 5부 감전 엔딩신을 찍는데 눈을 하얗게 뒤집는 컷을 찍고 제가 임지연 배우에게 '괜찮을까요…? 이 컷 써도 되나요?' 물어보자 '왜요? 이렇게 해야 재밌지 않아요? 꼭 써 주세요' 하는 쿨한 답변을 듣곤 시청자들이 서리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겠단 확신이 들었습니다. 코미디까지 정복한 모습을 보고 배우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고, 앞으로 또 어떤 인생 캐릭터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함께 이 멋진 작품을 완성해 냈다는 경험이 제겐 오래오래 영광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허남준 배우는 아직도 매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유니크한 배우입니다. 외양은 단단하고 섹시한데 내면은 유쾌하고 말랑해서 '뭐 이런 입체적인 사람이 다 있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연기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매력이 넘쳐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우선 매우 유연합니다. 다채로운 표정 연기와 몸을 쓰는 연기의 유연함뿐만 아니라, 힘든 현장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활짝 열려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언제나 온화하고 쾌활한 태도로 현장의 분위기를 이끌어 줬습니다. 세계가 오면 촬영 현장에 '딸깍' 하고 따뜻한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은 저뿐 아닌 동료 배우, 현장 스태프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영감을 줬습니다. 그 유연함 속에 단단한 자신만의 주관과 연기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세계와 이현이라는 두 캐릭터의 다층적인 매력을 소화해 여심을 사로잡아 글로벌한 인기 스타가 된 것은, 이 작품 덕분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허남준 배우가 여러 경험을 통해 쌓아온 연기에 대한 진심과 타인을 대하는 올바른 삶이 언젠가는 그를 스타를 만들어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찾아왔을 그 영광의 시작을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을 통해 함께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3. '멋진 신세계'의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강현주 작가 :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포용력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구원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 안에서 사랑을 말하는 동시에, 보시는 분들이 삶을 긍정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다만 가랑비에 옷 젖듯 느껴 주시길 바랐는데 시청자분들에게 가 닿은 것 같아 기쁩니다.
극 안에서도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이 극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또한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대본의 결을 최대한 지켜주는 동시에 현장의 에너지를 더해주신 한태섭 감독님, 임지연·허남준을 비롯한 모든 배우님, 제가 일일이 알진 못하지만 진심을 다해준 모든 스태프 덕분입니다. 그분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어 낸 영상을 보면서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와 인물을 절절히 사랑해 주신 게 느껴져서 마음이 울컥합니다.
또한 매주 본방송을 기다리며 함께 즐길 수 있는 지상파 플랫폼의 특성이 '멋진 신세계'와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건 플랫폼 데스크 차원에서 단 한 번의 수정 요청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신뢰가 신인 작가인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색깔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도록 믿어주신 스튜디오S 홍성창 대표님과 조영광 CP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를 사랑으로 지켜봐 주신 분들은 시청자분들입니다. 제가 스치듯 적어둔 의미들을 다 찾아 주시고 어느 순간 더 멋진 의미를 만들어주신 시청자분들이 '멋진 신세계'를 아름답게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태섭 감독 : 인기의 요인을 특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정성 있는 주제와 디테일한 극본, 배우들의 호연과 앙상블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외롭더라도 버티다 보면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단순하지만 따스한 주제가 이 작품의 뿌리였고, 이 주제를 작가님께서 사랑을 통한 성장과 구원 서사로 촘촘하게 그려 내셨습니다. 이 진정성 있는 대본을 꼼꼼한 스태프들의 노력이라는 줄기로, 배우들의 호연과 앙상블이라는 잎으로 함께 뻗어 나가며 풍성한 이야기를 꽃피웠고 시청자들의 큰 사랑이라는 과실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4. 마지막 질문입니다. '멋진 신세계'는 작가, 감독, 배우, 모든 스태프가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 좋은 작품이 나온 사례 같은데요. 애쓴 제작진과 배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강현주 작가 : '멋진 신세계'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진심을 다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시청자분들의 좋은 평가 중에서 '작감배음(작가·감독·배우·음악)의 완벽한 팀플레이' '조별 과제의 성공 사례'라는 표현을 보았을 때 그래서 기뻤습니다. 일단 이 드라마는 대본을 가장 먼저 사랑해 주신 한태섭 감독님 덕분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공감하고 사랑해 주셨고, 그 고된 현장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전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감독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모든 파트에서 진심을 다해주신 스태프, 배우님들 덕분에 힘없는 활자가 생명을 갖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모든 이름을 하나하나 다 언급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편의 드라마가 시청자분들에게 도착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의 힘이 모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멋진 신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좋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저라는 신인 작가에게 가르쳐준 아름다운 현장이었습니다.
한태섭 감독 : 드라마란 참 요상한 작업 같습니다. 8개월간 아침마다 만나 가족보다 더 부대끼며 원수처럼 노려보다 친구처럼 밥을 먹고 '끝!'이라고 하면 순식간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남남으로 남는다는 게.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8개월의 시간을 채워서 인연을 맺는다는 건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8개월 동안 연출의 집요한 요구를 버텨내 주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서운 추위와 제작 시간의 압박에 현대극과 사극의 두 작품을 동시에 완성해야 했는데, 하필 또 연출까지 진심이어서 보통 고됨이 아니었을 걸 잘 압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같은 수치가 그 고됨을 완전히 보상해 주지 못하겠지만, 이 작품이 우리네 짧은 인생의 필모그래피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었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가 여러분께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하고 존경스럽게 역할을 다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통해 한국 드라마 역사에 박제된, 함께했던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의 앞날에 멋진 신세계가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