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통일 한국. 서울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에서 구형 반려 로봇 소녀 '엘리'가 사라진다. 로봇범죄 전담 형사 준은 사건을 쫓다 5년간 연락을 끊었던 여동생 모건과 다시 마주한다.
재미 한인 작가 박지선의 첫 장편소설 '루미너스'는 로봇 유괴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과 기계, 가족과 기억의 경계를 파고드는 SF 미스터리다.
준은 통일전쟁 당시 테러로 신체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인물이다. 모건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맞춰 로봇을 설계하는 기업의 핵심 개발자다. 여기에 퇴행성 질환으로 몸이 무너져가는 소녀 뤼지예가 고철 처리장에서 버려진 소년 로봇 '요요'를 발견하면서 세 사람의 삶은 하나로 얽힌다.
작품 속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인간의 말투와 표정, 감정과 기억까지 학습하며 때로는 가족과 연인의 자리를 대신한다. 소설은 "사랑과 슬픔을 흉내 내는 로봇은 인간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배경이 통일 이후의 서울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한남동의 부유한 주거지와 폐기된 로봇이 쌓인 외곽 고철 처리장, 북한 출신 노동자와 난민 혐오 시위가 공존한다. 작가는 분단의 상처와 가족의 상실을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겹쳐 놓는다.
'루미너스'는 사이보그 형사와 로봇 디자이너, 시한부 소녀의 시선을 오가며 사랑과 애도, 정체성과 기술 의존을 함께 다룬다. 기술이 인간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지, 혹은 또 다른 상실을 만들 뿐인지 묻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해외 출간 뒤 'LA타임스' 도서상과 어더와이즈 상을 받았고, '가디언'의 2025년 올해의 SF에 선정됐다. 로커스상 신인상과 아서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출간 전부터 드라마 '파친코' 제작사 미디어 레스가 영상화를 결정했으며, 2026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에도 선정됐다.
화려한 미래 기술을 그리면서도 소설이 끝내 향하는 곳은 인간의 온기다. '루미너스'는 로봇이 인간을 닮아가는 세계를 통해 오히려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지를 되묻는다.
박지선 지음 |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