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골든타임"…한국 '피지컬 AI 1강' 어떻게 가능한가

"생성형 AI는 늦었다"…정부, 피지컬 AI로 승부수
제조 데이터·월드모델·AI 반도체 '3대 축' 육성
최대 과제는 행동 데이터…국산 월드모델 확보도 관건
기술 개발·현장 실증·제도 정비 '동시 추진'

연합뉴스

정부가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의 새로운 승부처로 '피지컬 AI'를 낙점하고, 향후 3년을 골든타임으로 제시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중국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데이터 확보와 국산 월드모델 개발, 제도 정비가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꼽힌다.
 

"피지컬 AI 분야 아직 절대강자 없어"


5일 정부 등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향후 3년을 피지컬 AI 주도권 확보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핵심 기술 개발과 데이터 구축, 현장 실증, 제도 정비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피지컬 AI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배경에는 생성형 AI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에 뒤처졌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도규 과기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LLM(대형언어모델)은 우리나라가 진짜 많이 늦었다"고 털어놨다.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앞세워 패권 경쟁을 벌이는 분야인 만큼, 후발주자인 한국이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 실장은 "피지컬 AI 데이터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는 데이터라 아직 절대 강자가 없다"며 "지금이 우리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피지컬 AI는 인터넷에 축적된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생성형 AI와 달리, 로봇이 실제 작업을 수행하며 축적한 '행동 데이터'가 핵심이다. 이 행동 데이터는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만큼 글로벌 기업과 주요 국가들이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행동 데이터가 승부처…"월드모델이 핵심"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KT West빌딩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변하는 이도규 과기부 정보통신정책실장. 김기용 기자

그렇다고 방대한 행동 데이터를 사람 손으로만 구축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등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합성 데이터'와 '월드모델(World Model)'을 제시했다.

월드모델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AI가 학습해 가상환경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 가상 세계 안에서 로봇이 실제 공장에 투입되지 않고도 수만 가지 상황을 반복 학습하며 쌓는 데이터가 합성 데이터다. 실제 현장에서 일일이 모아야 했던 데이터를 가상공간에서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김욱 과기부 피지컬 AI PM은 월드모델을 "어느 목적지를 갈 때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처럼, AI도 월드모델 안에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빠르게 돌려보고 최선의 행동을 학습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앞으로 피지컬 AI 학습 데이터의 80~90%가 합성 데이터로 대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유니트리·딥로보틱스는 로봇 하드웨어를, 미국의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AI 모델과 하드웨어를 결합한 피지컬 AI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전에 향후 3년 안에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코스모스 쓰면 핵심 데이터 다 빠져나간다"


다만 월드모델 역시 해외 기술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박태완 과기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엔비디아가 개발한 월드모델 '코스모스(Cosmos)'를 갖다 쓰면 우리 제조 현장의 핵심 데이터가 다 나간다"고 지적했다. 원자력발전소나 반도체 공장 공정 데이터를 해외 월드모델에 학습시키는 순간 핵심 산업 데이터가 외국 기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정책관은 "삼성·SK하이닉스 같은 첨단 대기업들은 데이터가 절대 빠져나가면 안 된다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국산 월드모델이 꼭 있어야 피지컬 AI의 핵심을 잡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피지컬 AI 성능을 평가할 국제 표준이 아직 없다는 점도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송창종 과기부 디바이스AX혁신팀장은 "어떤 것이 높은 성능인지 평가할 벤치마크가 아직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도 지난달 29일 국민보고회에서 "피지컬 AI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만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에는 양질의 데이터와 최적의 현장이 갖춰져 있는 만큼 피지컬 AI 1강이 결코 도전적이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젠슨 황이 온 이유도 결국 데이터"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KT West빌딩에서 발언 중인 정수진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지역AX본부장. 김기용 기자

정부가 이처럼 피지컬 AI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이 보유한 제조 현장에 있다.

이 실장은 지난달 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이유도 결국 한국의 제조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피지컬 AI에서 가장 먼저 부가가치가 창출될 분야는 제조업이며, 한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가전 등 제조업 전반에 걸친 산업 기반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라는 설명이다.

피지컬 AI가 제조 현장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실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경남 8개 공장과 전북 3개 공장에서 피지컬 AI 시범 적용(PoC) 사업을 진행한 결과 생산성이 20% 이상 향상됐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발한 피지컬 AI 기반 무인공장 플랫폼 '카이로스(KAIROS)'도 주목받고 있다. 협동 로봇·물류 로봇·휴머노이드 로봇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이 플랫폼은 국내 기술 100%로 구현됐으며, 관리자 한 명이 AI와 음성으로 대화하며 지시하면 AI가 스스로 이상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한다.

송 팀장은 "국내에 피지컬 AI 풀스택 영역에서 빠진 기업이 없다"고 말했다. AI 모델과 반도체, 로봇, 시뮬레이터 등 풀스택을 구성하는 핵심 분야마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국내에 고루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들 기업이 아직 하나의 생태계로 결집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꼽힌다. 이 실장은 "각 요소 기술에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다 있는데, 이것들을 정부가 하나로 묶어 시너지를 높이고 성과를 내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과기부는 이를 위해 지난달 '피지컬 AI 얼라이언스' 2기를 출범시켰다. 인식을 공유하는 데 그쳤던 1기와 달리, 2기는 풀스택 기술 확보와 실행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앞세워 피지컬 AI를 새로운 승부처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정부가 제시한 골든타임 안에 데이터와 핵심 기술, 제도 기반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가 글로벌 피지컬 AI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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