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가 져도 3위가 가능해요?"
등교 준비를 하던 아이가 물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경기인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전. 어디서 경우의 수를 봤다면서 져도 조 3위가 가능한지 물었다. 3위로도 32강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 3위 경우의 수는 간단했다. 남아공에 이기거나 비기면 무조건 조 2위. 남아공에 지더라도 체코가 멕시코에 패하면 됐다. 실제로 남아공에 지고도 체코가 멕시코에 패한 덕분에 조 3위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그럼 체코-멕시코전은 언제 해요?"
사실상 아빠와 함께하는 첫 월드컵. 조별리그 1, 2차전은 두 경기가 다른 시간에 열렸기에 생기는 궁금증이었다. 아이에게 "3차전은 두 경기가 같은 시간에 열려"라고 답했더니 아이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왜 3차전은 같은 시간에 해요?"라고 다시 물었다.
지금이야 조별리그 3차전이 같은 시간에 열리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별리그 3차전이 같은 시간에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였다.
'히혼의 치욕'이라 불리는 사건 때문이다.
1982년 열린 스페인 월드컵. 알제리는 조별리그 2조에서 서독을 2-1로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2승1패로 조별리그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알제리-칠레의 3차전 하루 뒤에야 서독-오스트리아의 3차전이 열렸다는 점이다. 알제리는 2승1패를 기록하고도 아직 16강 진출을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서독이 1승1패, 오스트리아가 2승. 서독-오스트리아전 결과에 따라 알제리가 조 3위까지 내려갈 수도 있었다.
서독이 전반 10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후 서독은 수비 라인을 잔뜩 내렸고, 오스트리아는 강하게 서독 골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서독도, 오스트리아도 골을 넣을 이유가 없었다. 서독의 1-0 승리로 끝나면 서독, 오스트리아, 알제리가 2승1패 동률이 되고, 골득실에서 서독, 오스트리아가 16강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루하게 볼만 돌리다가 1-0 서독의 승리로 끝났고, 알제리는 탈락했다.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은 조별리그 3차전을 같은 시간에 치르는 방식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실제 한국도 같은 시간 열린 조별리그 3차전 결과로 16강에 진출한 경험이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2-1로 격파했다. 이어 그라운드 위에 모여서 핸드폰을 바라봤다. 같은 시간 열린 우루과이-가나전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이 결정됐기 때문. 우루과이가 가나를 2-0으로 꺾었고, 우루과이에 다득점에서 앞선 덕분에 16강에 진출했다. 가나가 이기거나 비겼다면 한국의 16강 진출은 없었다.
이 상황을 설명하자 아이는 "기억 나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다만 이번 월드컵부터 48개국 체제로 바뀌면서 3차전이 같은 시간에 열리는 의미가 조금 퇴색된 모양새다. 조 3위 12개국 가운데 상위 8개국이 32강에 진출하게 되면서 오히려 다른 조와 눈치 싸움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조별리그 가장 마지막에 열린 J조 알제리-오스트리아전이 그랬다. 2-2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 알제리의 리야드 마레즈가 골을 터뜨리자 오스트리아 벤치에서 알제리 벤치를 향해 소리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미 다른 조 경기가 모두 끝난 상황에서 알제리와 오스트리아는 비기기만 해도 모두 32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 결국 오스트리아는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 동점골을 넣었다.
3-3 무승부. 결국 G조 3위 이란(3무)이 3위 가운데 9위로 밀려나며 탈락했고, 알제리-오스트리아전은 입방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