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7일 물적분할 자회사의 중복상장 시 모회사 주주동의를 필수로 요구하는 세부 기준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페이 등 알짜 자회사를 쪼개 별도 상장하는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가치가 희석된다는 지적이 이어져온 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이날 '중복상장 원칙금지·예외허용'을 위한 한국거래소 규정 개정안 및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제정안을 공개하고 오는 14일까지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이번 기준은 지난 3월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 발표 이후 3차례 공개 세미나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됐다. 이번 규정 개정안과 가이드라인 제정안은 오는 14일 예고기간이 끝난 뒤 증선위와 금융위원회 정례회의 의결을 통해 최종 시행될 예정이다.
모회사 이사회, 5대 의무 먼저 이행해야
이번 기준에 따라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충실의무에 기반한 5대 의무가 새로 부과된다. 이사회는 △중복상장이 주주에게 미칠 영향 평가 △자회사 주식 현물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보호 방안 마련 △주주 소통 또는 주주동의 여부 확인 △이사회 찬·반 결의 및 자회사 통지 △의무 이행 사항에 대한 단계별 공시 등 5가지 의무를 순서대로 이행해야 한다.
의무 이행 과정에서는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거나 사외이사·외부전문가가 3분의 2 이상인 독립적 특별위원회의 사전 심의·의결도 거쳐야 한다. 이사회 의무를 위반하면 최대 10억원의 제재금과 하루 매매거래정지 조치를 받는다. 공시의무 위반 시에는 제재금 부과와 함께 벌점이 누적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 사유가 되고, 불성실공시 지정 사실도 공시해야 한다.
물적분할 자회사, 주주동의 없으면 상장 불가
이사회가 5대 의무를 이행한 뒤에는 중복상장 특례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핵심은 물적분할 자회사에 대한 주주동의 의무화다. 그동안 기업들은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자회사로 독립시킨 뒤 별도로 상장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음에도 모회사 이사회와 지배주주는 "자회사 상장은 자회사 이사회 결정사항"이라는 이유로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됐다.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2025년 말 기준 11.2%로 미국(0.05%), 일본(4.0%), 중국(2.4%), 대만(2.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주주동의 방식을 놓고 업계에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 △소수주주 다수결(MoM·Majority of Minority) △3%룰 적용 일반결의 등 세 가지 방안이 거론돼 왔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문턱이 높아 중복상장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MoM은 지배주주를 표결에서 아예 배제하고 소수주주만의 과반 동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소수주주 보호 효과가 가장 크지만 기업 반발이 거셌다.
금융당국이 최종 선택한 건 '3%룰 적용 일반결의'다. 상법상 감사위원 선임 기준을 준용해 지배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태에서 참석 지분 과반 동의, 전체 의결권 대비 4분의 1 이상 동의를 받으면 된다. 특별결의보다는 기업 부담이 낮고 MoM보다는 지배주주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중간 지점을 택한 셈이다. 다만 지배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소수주주의 의사가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여서, 기업 입장에서도 주주 설득 없이는 통과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적분할 자회사가 아닌 일반 자회사의 경우 주주동의를 받으면 주주보호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추정한다. 주주동의가 없더라도 상장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엄격한 개별심사를 거쳐야 한다. 매출·영업이익·자산이 모회사 대비 모두 10% 미만인 저비중 자회사는 주주동의 없이도 상장이 가능하다.
해외 상장도 '이사회 5대 의무' 지켜야
한편 이번 규제를 피해 해외 거래소로 상장 무대를 옮기려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이사회 5대 의무가 자회사를 해외 거래소에 상장시킬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고영호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미국 상장의 경우 국내에서 적용하는 IFRS가 아닌 US GAAP(미국 회계기준)을 적용해야 해 회계 기준을 두 개 동시에 운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 의무도 지속적으로 준수해야 한다"면서 "해외 상장이 실제로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 과장은 또 "현지 법인을 설립한 뒤 주식의 포괄적 교환으로 넘기는 방식을 검토하는 기업도 있는데, 국내 법인 간 포괄적 교환 시 양도세를 면제해주는 것과 달리 해외 법인으로 포괄적 이전을 할 경우에는 양도세 부담이 발생하는 만큼 기업들이 이런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따져 경영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