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 삼국유사가 삼대 60년에 걸친 네덜란드 학자들의 집념 끝에 영문으로 완역됐다.
미국 하와이대학교 출판부가 최근 출간한 'Vestiges of the Three Kingdoms of Ancient Korea'(고대 한국 삼국의 흔적)다.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1281년 편찬한 삼국유사를 무려 2천 개의 각주와 함께 영문으로 통째로 번역한 책이다.
삼국유사를 외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으로는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하태흥 씨 등의 번역으로 1972년 내놓은 영문판 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상세한 주석과 함께 삼국유사 전체를 망라한 영문 완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 한국학 전문가들 감수를 거쳐 출간된 이 책은 스승과 제자 관계가 계속 이어진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 소속 한국학자 세 명이 이룬 결실이다.
레이던대학교 한국학과 설립 주역이자 유럽 한국학 선구자인 프리츠 포스(1918~2000) 교수와 그의 제자 바우데베인 발라번(79) 명예교수 그리고 발라번 교수 제자인 렘코 브뢰커(54) 교수다.
먼저, 포스 교수는 1954년과 1955년 삼국유사에 관한 논문을 독일 동아시아 학회지에 발표하면서 삼국유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 교수는 1960년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당시 연구와 자료 수집에 박차를 가하면서 삼국유사 영문 완역과 각주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포스 교수는 목표했던 완역과 각주를 다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채 군데군데 빠진 초벌 번역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그는 2000년 별세 전 수제자였던 발라번 교수에게 자신이 못 이룬 삼국유사 완역과 각주 작업을 마쳐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스승 유언을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던 발라번 교수는 2010년 고려 시대 전문가이자 자신의 애제자인 브뢰커 교수가 합류하자 삼국유사 완역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16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2천 개의 각주를 단 삼국유사 영문 완역본을 출판하는 데 이른 것이다.
브뢰커 교수는 "한국인들에게 삼국유사는 서양의 성경과 견줄 만하다"며 "게다가 삼국유사는 그 자체로도 풍부한 이야기가 담긴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또 "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그간 삼국유사를 학문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완역본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는데, 이 책으로 그런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번 삼국유사 영문 완역본 출간으로,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외국 독자들 이해가 깊어지고 한국학 연구에도 새 지평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