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영의 첫 장편소설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는 심야 근무 뒤 과로사한 30대 직장인 여성이 성인 웹툰 속 인물 '이누리'에게 빙의하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웹툰이 남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러 여성이 얽히는 19금 오피스 하렘물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세계의 중심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남성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도록 설계된 캐릭터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웹툰 속 규칙과 맞서기 시작한다.
또 다른 축에는 이 웹툰 '심야 근무의 사정'을 그린 만화가 한소연이 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올 만큼 만화를 사랑했지만, 생계를 위해 성인 웹툰을 그리다 번아웃에 빠진 창작자다.
소설은 웹툰 속 인물과 웹툰 바깥의 작가를 교차시키며 '회귀·빙의·환생' 장르의 익숙한 공식을 비튼다. 다시 태어나도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세계에서, 인물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간다.
권혜영은 성적 욕망과 관음적 관계가 넘쳐나는 웹툰 세계 안에서 오히려 가장 절실한 사랑을 묻는다. 그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일하다 죽지 않는 삶, 자신을 먹이고 입히며 돌보는 삶, 좋아했던 것을 다시 사랑할 힘에 가깝다.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는 자극적인 장르 설정을 빌려 염세적인 현실을 통과하는 순애의 가능성을 그린다.
권혜영 지음 | 은행나무
코미디언이자 사업가, 연극배우로 활동해온 이원승이 첫 시집 '머무르지 않는 삶'을 펴냈다.
이 시집은 웃음과 눈물의 무대를 지나온 이원승이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붙잡은 경험과 이후의 시간을 시로 옮긴 책이다.
시집은 1부 '그 앞에서', 2부 '꽃 소리', 3부 '보이지 않는 것', 4부 '시간의 꽃'으로 구성됐다. 죽음과 삶, 무대와 일, 사랑과 가족, 신앙과 시간에 관한 고백이 짧고 선명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이원승은 코미디언으로 웃음을 전하고,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며, 피자를 굽는 사업가로도 살아왔다. 시집에는 그가 겪은 도전과 실패, 어머니와 친구에 대한 미안함, 가족과 신앙 안에서 붙잡은 감사가 담겼다.
각 부 앞머리에 실린 산문은 시인이 지나온 삶의 중요한 장면을 보여준다. 산문은 짧은 시편들의 배경이자 또 다른 고백으로 읽힌다.
나태주 시인은 이원승의 시에 대해 쉽고 특색 있으며, 짧고 단순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표현을 살리고 있다고 평했다.
'머무르지 않는 삶'은 성공담을 과장하거나 고난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오늘을 살아내려는 한 사람의 마음을 통해 독자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이원승 지음 | 밥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