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집니다!" 지난 8일 경기 고양 킨텍스 'AI안전보건박람회' 전시장. 사다리 위 약 3m 높이에서 조끼를 입은 상반신 마네킹이 아래로 떨어지자 '펑' 소리와 함께 에어백이 순식간에 부풀었다. 바닥에 닿기도 전,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잔뜩 팽창한 에어백은 마네킹을 단단히 감싸 목 부분이 꺾이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입는 에어백'입니다. 센서가 추락을 감지해 70cm 이상 계속 낙하하면 순간적으로 팽창해 추락 사고 시 사망률이 가장 높은 머리, 목, 척추, 갈비뼈, 장기 순으로 보호합니다." 제작 업체인 세이프웨어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자가 직접 입고 바닥에 누워봤다. 안전 문제로 직접 뛰어내릴 수는 없었지만, 딴딴하게 부푼 에어백이 등과 목을 견고하게 받쳐줘서, 만약 떨어지더라도 주요 부위를 다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1.8kg 무게를 들을 때에는 상당히 무거울 것 같았지만, 막상 직접 착용해보니 숫자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관성센서(IMU)가 작업자의 움직임 속도를 실시간 분석해 위험 임계치를 넘는 낙하를 감지하면 이산화탄소 가스로 에어백을 전개하는 원리다. 업체 설명에 따르면, 전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2초에 불과하다.
이미 실제 현장에서 사람을 구한 이력도 있는, '검증 완료'된 제품이다. 업체에 따르면 지난달 보령의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자재 결속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약 4m 높이에서 뒤로 떨어졌지만, '입는 에어백'이 머리·목·척추를 보호해 팔 골절상에 그쳤다.
현재 2300여 개 현장에 2만 6천 벌 이상 보급됐고, 축사 지붕 추락사고 대책의 하나로 전국 128개 축협에도 비치됐다는 게 업체 설명이다. 더 나아가 데이터를 축적하고 인공지능(AI)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도 위험을 감지하도록 기술을 적용·개발 중이다.
사고사망 10명 중 4명이 '추락'…기술이 최다 사망 유형을 파고들다
추락 방지 기술이 박람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떨어짐'은 산재 사고사망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사고 원인이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사고사망자 605명 가운데 '떨어짐'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249명(41.2%)으로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전시장에는 추락을 서로 다른 단계에서 막으려는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였다.
스마트 안전고리 업체 '엘센'은 2m 이상의 높은 곳에서 진행하는 고소(高所) 작업에서 안전고리를 걸지 않으면 작업자에게 즉시 경보를 보내 안전고리를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안전고리 안에 3가지 이상의 복합 센서를 넣어 작업자의 움직임과 체결 여부를 판단하고, 체결하지 않았다는 정보가 잡히면 중계기를 거쳐 현장 경광등과 안전관리자의 대시보드까지 전달된다. 추락사의 상당수가 안전고리를 체결하지 않았다가 발생하는 만큼, 사고가 일어나기 전 '안전고리를 거는 습관'부터 만들어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접근이다.
아예 떨어질 일 자체를 줄이는 장비도 있었다. A형 사다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자 안전보건공단과 '은진산업'이 공동 개발한 'K사다리'다.
기자가 최대 높이 2.2m까지 확장한 5단 사다리에 직접 올라가봤다. 흔들리거나 위태로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네 지점에 달린 바퀴를 눌러서 고정하고, 다시 눌러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동-고정'을 반복하는 사다리 작업의 특성에 맞춘 것이다. 여기에 지형지물에 관계없이 고정되는 특수 안전 다리까지 추가로 갖춰 더 안전했다.
가격은 100만 원 초반 수준인데, 50인 미만 사업장은 구입 비용의 일정 부분을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시원한 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폭염 산재도 기술로
추락이 '연중 최다' 위험이라면, 폭염은 '지금 당장'의 위험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의 작업복 브랜드 '볼디스트' 부스에서 팬(FAN)이 달린 '에어로 베스트'를 입자마자 마치 시원한 방에 들어선 것 같았다. 조끼 안에 도는 바람이 몸과 옷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바깥 기온과 분리시켜줄 뿐 아니라, 땀이 빠르게 마르면서 옷이 몸에 들러붙지도 않았다.
인체공학 패턴을 활용해 바람길을 뒷목 쪽으로 열어둬 안전모를 쓴 채로도 목덜미에 바람이 닿도록 설계했다. 영상 18도 이하에서도 저절로 어는 특수 소재(PCM)를 넣은 쿨링 목걸이까지 겹쳐 쓰면 체온을 더 낮출 수 있다.
옷과 팬을 합친 무게는 고작 619g. 완충하면 최대 풍량으로도 7시간, 약풍으로는 28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어 하루 작업을 너끈히 버틴다. 용접·목공 현장을 위해 날카로운 물건의 베임에 강한 아라미드 소재를 쓴 제품군도 있었다. 건설 현장은 물론 자동차 정비, 목수 작업장 등으로 점차 널리 보급되고 있다는 게 업체 설명이다.
지게차가 '사람만' 알아본다…부딪힘 사고 겨냥한 AI
'부딪힘'은 지난해 사고사망자가 62명으로 전년 대비 24.0% 늘어 '떨어짐'과 함께 증가 폭이 컸던 유형이다. 특히 도·소매업 등에서는 운반 작업 중 지게차·트럭에 부딪히는 사고가 사망자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포커스에이아이'의 '지게차 AI 인체감지 시스템'은 이 지점을 겨냥했다. 핵심은 AI에 사람의 형상만 따로 학습시켜 오로지 사람만 감지한다는 점이다. 차량이나 적재물까지 감지하면 경보가 무분별하게 울려 자칫 운전자가 경보에 둔감해질 수 있는 문제를 해결했다. 같은 이유로 지게차의 전·후진 기어 신호와도 연동해 실제 움직일 때만 경보가 울린다.
지게차 아래쪽에 따로 카메라를 달아 사람의 '하반신'만 학습시킨 알고리즘도 눈에 띄었다. 만약 운전자가 지게차의 적재물을 높이 들어 시야가 가려져도, 이 카메라가 전방 보행자의 다리를 운전자 대신 인식해 경보를 울려준다.
업체 관계자는 "브레이크를 강제로 잡으면 적재물이 쏟아져 2차 인명피해가 날 수 있어, 제동 제어보다 사전 경보로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삼성중공업에 지게차 200대 규모로 납품되는 등 조선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향후 쓰러짐 감지·안전모 착용 감지 기능도 연동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안전보건 박람회…"장비가 진화하고 있다"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 6일 개막해 성황리에 진행중인 이번 박람회에는 국내외 320여 개 기업이 참여해 △국내외 최신 안전보건 신기술 △3대 사고(추락·끼임·부딪힘) 예방 솔루션 △AI 기반 스마트안전기술 체험 등을 선보이고 있다. 단연 국내 최대 규모의 안전보건 박람회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안전장비들이 '더 안전한 작업 현장'을 향해 진화하는 흐름이 읽혔다. 색채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색약자·고령자·외국인 노동자도 위험 신호를 즉각 알아보게 한 안전 시스템(KCC), 고방사선·수중·밀폐 구역 등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곳에 투입되는 지능형 로봇(한국수력원자력), 일반 제품보다 100g 가벼운 300g 초경량 안전모(에스탑) 등도 관람객을 맞았다.
일반 관람객을 위한 체험 공간도 확대됐다. 특히 올해 처음 도입된 공간 기반 가상현실(LBVR) 체험은 좁은 공간에 앉아서만 하던 기존 VR 체험과 달리, 여러 명이 장비를 착용하고 직접 걸어 다니며 건설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다. 공단은 장비만 옮기면 되는 만큼 실제 산업 현장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는 체험 교육 장비로 확산시킨다는 구상이다.
'산업안전보건의 달' 중앙행사인 이번 박람회는 오는 9일까지 열린다. 이어 오는 13일부터는 이동노동자, 조선·항만, 철도 등 각 지역 산업 특성에 맞춘 행사가 전국 7개 지역에서 한 달간 이어진다.
산업안전보건의 달은 노사와 국민에게 안전보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주간이다. 원래 1968년 7월 첫째 주 월요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 및 '산업안전 강조주간'으로 지정해 개최하던 행사였다. 지난 2023년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라 한 달 단위 행사로 격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