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나라의 운명이 문밖에서 결정되는 동안 집안일에 여념이 없었던 장면이 되풀이해 나온다. 1905년 여름, 도쿄와 워싱턴의 밀실과 포츠머스의 회담장에서 한반도의 앞날이 흥정되는 동안,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어느 테이블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그때의 침묵은 힘이 없어 강요당한 침묵이었다. 121년이 지난 2026년 여름, 나는 이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탄핵의 격랑을 지나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 치러진 전국 지방선거를 지나며, 우리 사회의 시선과 힘은 온통 국내문제를 향해 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사이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재편되고 있다. 중동의 전쟁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미중 사이의 경쟁이 깊어지는 한복판에서, 일본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시선을 살피며 미루어 왔던 평화헌법 개정에 마침내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은 전후 처음으로 단독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고, 총리는 "때가 왔다"라고 선언했으며, 2028년 참의원 선거 전 평화헌법 개정의 발의와 국민투표 실시 의향까지 내비쳤다. 79년간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은 일본의 헌법이 바뀌려 하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가.
이웃 국가의 우려에 일본이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 우리는 오랫동안 보아 왔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이웃 국가가 항의할 때마다, 역사 교과서 문제로 비판이 일 때마다, 일본 정치권은 어김없이 "내정간섭 말라"는 방패를 꺼내 들었다. "마음의 문제에 타국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라던 고이즈미 총리의 응수가 그랬고, 개헌은 "일본 국민이 정할 일"이라던 아베 총리의 언명이 그러한 연장이었다. 개헌을 둘러싼 이웃 국가의 우려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유사한 방패가 나올 것은 불 보듯이 훤하다.
그런데 이웃 나라 정부들은 외교 관례의 벽 앞에 서 있다. 타국의 헌법에 대한 공식 논평은 그 자체로 외교 마찰의 불씨가 되기에, 한국 정부도 그동안 원론적 언급 너머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저쪽은 언제든 말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쪽 정부는 말을 아껴야 하는 비대칭의 사각지대에서, 개헌의 시계만 소리 없이 돌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자연히 민간의 몫이 된다. 시민의 말은 정부를 대신하는 말이 아니다. 외교 문서가 아니기에 관례에 매이지 않고 진심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시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국경을 넘어 한일 시민사회가 손잡고 그 목소리를 키워 갈 때, 우리는 양국 정부 당국자들에게 역사의식의 성찰과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 그 시계가 다 돌기 전에 말이다.
국제법은 '간섭'이라는 말을 생각보다 좁게 사용한다. 유엔헌장의 주권평등 원칙에서 자라나 1970년 우호관계원칙선언으로 정식화된 간섭(intervention) 금지란, 타국이 자유로이 결정할 사항에 '강제'(coercion)를 동원해 개입하는 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가 1986년 니카라과 판결에서 국제관습법으로 확인한 기준이 그렇다. 무력 지원, 경제적 강압, 정권 전복 기도처럼, 상대국의 선택을 힘으로 비트는 행위가 간섭이지, 의견의 표명과 외교적 우려의 전달은 간섭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 국가들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관례이다.
각국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모여 서로의 법제를 심의하고 권고하는 보편적 정례 검토가 그 제도화된 모습이다. 실은 일본 자신이 이를 잘 알고 있다. 2021년 중국이 해경법을 제정하자 일본 정부는 자국의 안보에 미칠 영향을 들어 즉각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웃 나라의 법이 나의 안전에 위해가 된다면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바로 일본이 해 온 외교 사례다. 남이 하면 간섭이고 내가 하면 외교일 수는 없다.
이 물음에 한 걸음 더 나가 보자. 일본 헌법 제9조는 과연 순수한 '국내문제'인가. 국제법에서 국내문제란 고정된 성역이라 할 수 없다. 상설국제사법재판소는 1923년 이미 국내관할사항이란 국제관계의 발전에 따라 달라지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판시했다. 국제적 약속의 대상이 된 사안은 더 이상 한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헌법 제9조야말로 그 전형이다. 이 조항은 진공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수락한 포츠담선언은 군국주의 세력의 영구적인 제거와 무장해제를 항복의 조건으로 못 박았고, 일본은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이를 국제법상 의무로 받아들였다.
일본 헌법 제9조는 국제적 서약을 헌법의 언어로 새긴 것이다. 일본 헌법의 전문(前文) 스스로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유지하기로 결의하였다"라고 고백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평화헌법은 침략으로 고통받은 이웃 나라들 앞에 제출된 반성문이며, 국제 약속의 이행을 스스로 다짐한 서약서다. 반성문의 수신인은 피해국들이고, 서약의 상대는 국제사회이다. 그렇다면 이 헌법은 태생적으로 일본만의 소유가 아니다. 일본과 이웃 국가들, 그리고 전후 국제질서가 함께 지분을 가진 공동의 규범 자산이다. 공유물의 처분을 앞두고 공유자가 의견을 말하는 것을 간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지정학적 현실이 겹친다. 동북아처럼 여러 국가가 밀집하고 역사의 상처가 생생한 지역에서, 한 나라의 군사적 전환은 곧바로 이웃 국가들의 안보 환경을 바꾼다. 모든 국가가 자국민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사안에 우려를 전하는 것은 권리이기 이전에 책무이다. 거꾸로 물어보자. 피해국의 시민들이 이를 알면서도 침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 유기가 아닌가.
1930년대 국제사회가 군국주의의 팽창을 '남의 나라 일'이라며 외면한 탓에, 이 지역의 모든 국민은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반면 이웃 국가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평화공존을 이룬 나라도 있다. 전후 독일의 재무장과 통일은 프랑스를 비롯한 이웃 국가들의 동의와 관여 속에 한 걸음씩 이루어졌고, 독일은 그 과정에서 쌓인 신뢰 위에서 유럽 통합의 중심 국가가 되었다. 이웃 국가들의 관여를 받아들인 나라가 오히려 큰 지위를 얻은 사례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이러한 호소는 이웃들만의 혼잣말이 아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61%가 헌법 제9조 개정에 반대했고, 72%는 개헌 논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일본 헌법의 호헌을 바라는 이웃의 목소리는 일본 시민 다수의 마음과 같은 곳을 지향한다. 더욱이 지난 3월 호르무즈 위기 국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의 파병 요구 앞에서 헌법 9조를 거절의 근거로 삼았다. 평화헌법 제정의 산파였던 미국의 요구를, 바로 그 헌법으로 거절한 것이다. 지금의 헌법 자체가 일본을 지켜 주는 안보자산임을 개헌론자인 총리가 자인한 셈이다. 이웃 국가들이 평화헌법을 함께 지키자는 것은 일본을 묶는 족쇄가 아니라, 일본이 꺼내 쓴 방패였다.
일본의 개헌 논의는 일본만의 개헌 이야기가 아니라 동북아의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며, 흘려들어도 되는 뉴스가 아니라 우리의 안보에 직결된 중요한 사안이다. 이재명 정부와 대한민국 국회에 정중히 요청한다. 국내 정세를 살피는 것과 함께 나라 밖의 흐름을 직시하고, 민간에서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청취하라는 것이다. 우리 시민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강제 없는 의견 표명은 국제법상 간섭이 아니며,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는 국제적 약속에서 태어난 공동의 자산이므로 그 존폐 여부는 우리의 정당한 관심사이다. 두려워할 것도, 주저할 것도 없다. 120여 년 전 말할 자격조차 얻지 못해 침묵해야 했던 우리의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말할 자격도, 함께할 벗도 있다. 한일의 시민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온 교류와 신뢰가 있고, 평화를 바라는 양국 국민의 다수 여론이 있다. 그 힘을 모아 동북아 평화공존의 길을 함께 넓혀 가면 좋겠다. 79년 전 일본은 세계 앞에서 한 장의 반성문을 썼다. 그 반성문이 찢어지려 하는 이때, 수신인 중 하나인 우리가 답장을 보내야 할 때다. 이 글이 그 답장의 첫 줄에 보태지기를 바라며, 평범한 시민으로서 몇 자 적어 본
윤재선 (산천무지개교회 담임목사, 오사카공립대학 객원교수, 평통연대 공동대표)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