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리센느(RESCENE) 리더 원이가 유튜브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이하 '안원잘부')라는 채널을 만들고 첫 영상을 올린 건 올해 2월 5일이었다. 윤성원 PD가 이끄는 제작사 솔파스튜디오와 함께하는 '안원잘부'에 뚜렷한 캐릭터를 가지고 멤버들을 파고드는, 왠지 공식보다는 서브 채널에 어울릴 것 같은 콘텐츠가 공개된 건 3월 6일이었다. '갸루' 미나미가 그렇게 등장했다.
채널 주인인 원이의 정체성도 분명했다. "저는 거제에서 태어나 옥포초등학교와 옥포성지중학교, 거제제일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더뮤즈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리센느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채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미지의 첫 줄부터 '거제 출신'임을 밝혔다. 리센느와 거제의 인연은 깊다. "거제 야호!"라는 미나미의 우연한 말은 유행어가 됐고, 최고 조회수(1028만 회) 영상 역시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 (거제 1편)'다.
일본에서 온 미나미에게 화려하고 컬러풀한 스타일링과 새침한 말투로 대표되는 '갸루' 콘셉트를 주고, 각각 거제와 경주 출신인 원이와 제나에게 온종일 자유롭게 '사투리'를 쓸 수 있게 해 하나씩 캐릭터를 구축한 리센느. 리센느를 향한 관심도가 얼마쯤 궤도에 올랐을 때도 아직 '안원잘부'에 정식 출연하지 못해 '연습생' 신분이었던 리브와 메이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라는 부담감을 숨기지 못했다. 영민한 제작진은 그런 '조급함'마저도 놓치지 않고 콘텐츠에 녹였다.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콘셉트와 음악으로 경쟁하는 K팝 신에서 그렇게라도 눈길을 붙잡지 않으면 발견될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발견되기 위해서는 다른 길을 반드시 개척해야 하는데 리센느는 '잘 만들어진 유튜브 예능 콘텐츠'로 그 길을 발견한 듯하다"라고 짚었다.
그는 "유튜브 흥행 후 조바심을 내면 이렇게 큰 '밈'이 만들어졌을 때 주목받는 소수 멤버만을 반복 노출한다거나 캐릭터를 빨리 소모한다든지 하면서 삐끗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작사는) '존이냐박이냐' '2005채연' 등 가수 중심 음악 예능을 만들며 익힌 특유의 리듬을 바탕으로 이후 시리즈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 멤버 전원의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라고 정리했다.
유튜브를 통한 자체 콘텐츠가 주목받은 다음에는, 리센느의 음악도 같이 떠올랐다. 대중이 가장 먼저 '픽'(선택)한 곡은 2024년 8월 발매한 첫 미니앨범 '씬드롬'(SCENEDROME) 타이틀곡 '러브 어택'(LOVE ATTACK)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순위가 오르더니 지난 8일 마침내 멜론 '톱100' 1위를 차지했다. 발매 후 680일 만의 일이었다.
'러브 어택'은 16일 현재 일간 차트에서도 정상을 지키는 중이다. 카라(KARA)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신곡 '프리티 걸'(Pretty Girl)은 6위, '데자부'(Deja Vu)는 23위, '런어웨이'(Runaway)는 50위다. 한 곡에 그치지 않고 다른 곡도 여간해선 틈을 주지 않는 공고한 음원 차트에 진입해 나날이 순위가 오르는 점이 눈에 띈다.
랜디 서 평론가는 "(다채로운 캐릭터 어필로)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관심이 팀 전체로 옮겨갔고, 그냥 스칠 때는 듣기에 좋지만 덕질까지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그 음악이 마침내 '팀이 한 명 한 명 귀엽더니 노래도 듣기 편하고 좋다'라는 반응을 끌어낸다. 팬들이 리센느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자컨'이 흥미롭고 예쁜 길로 닦아놓은 것"이라고 바라봤다.
'안원잘부' 흥행이 음원 역주행을 이끈 과정이 흥미롭다고 한 예미 음악평론가는 "리센느도 꾸준히 자체 예능 콘텐츠(이하 '자컨')를 만들어 왔는데, 여기서 가능성을 본 외부 프로덕션(솔파스튜디오)가 붙다 보니 여타 아이돌 자컨에 비해 아이돌 저관여층에도 보다 가독성 높게 다가가는 캐릭터 구축, 콘텐츠 구성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미 평론가는 "유튜브 채널 및 숏폼 콘텐츠의 흥행으로 유입된 시청자들이 기존에 누적된 자컨, 발매곡, 무대 등 활동 이력을 톺아보며 충성 팬덤으로 정착하면서, 흥행 발단인 '거제 야호!'가 단순히 숏폼의 밈으로 그치지 않고 현재와 같은 폭발적인 역주행이 가능했으리라 본다"라고 전했다. 박희아 음악평론가도 "유튜브 예능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자연히 팀에게로 관심이 옮겨간 새롭고 특별한 사례다. 쇼츠와 밈에 최적화된 세태 반영적인 성공 서사라고도 볼 수 있다"라고 짚었다.
미묘 음악평론가는 "K팝 산업에서 준수한 노래가 대중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봤다. 그는 "리센느는 K팝 타이틀곡이 흔히 갖춘 독기 혹은 귀에 들러붙는 느낌을 지향하지 않는 편이라 섬세하고 우아한 데가 있다. 대중에게 발견되고 히트하는 데에는 보통 그것 이상의 '뿔'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거제 야호!'가 그 뿔이 되어줬다고 할 수 있다. 리센느 곡 중 가장 '뿔 달린 노래'에 근접한 '러브 어택'이 역주행 중심이라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성현 음악평론가는 "'러브 어택'만 상승을 겪는 게 아니라 이외 여러 노래가 동시다발적으로 차트인(진입)에 성공하고 있다. 2021년 '롤린'(Rollin')과 '운전만해'가 함께 차트에 등반했던 브레이브걸스(Brave Girls)의 폭발력을 다시 보는 느낌"이라고 운을 뗐다.
한 평론가는 "무대 영상 등의 음악 콘텐츠가 아닌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케이스라, 플랫폼은 다르지만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스타골든벨' 등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리던 아이돌의 양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K팝 아이돌에게 '친근함'이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기회"라고 부연했다.
김진우 음악 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는 "가요계의 역주행 케이스는 노래만 주목받는 경우, 가수도 함께 주목받는 경우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라며 "그룹 여자친구(GFRIEND)의 '꽈당 사건'(※ 기자 주 : 비가 와서 무대가 미끄러운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무대를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큰 화제가 됐다)과 이엑스아이디(EXID) 하니 직캠처럼 아티스트에 관한 대중 관심도가 올라가면 후속곡 흥행에도 영향을 준다. 리센느도 이런 케이스라서 최근 나온 '프리티 걸' 역시 차트 상위권으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소규모 기획사에 속한 아이돌이자, 데뷔 2주년을 막 지난 '신인'이 만들어낸 성과이기에 다는 반응도 있었다. 가요 관계자 A씨는 "요즘 같은 시장에서 중소 기획사가 아이돌을 성공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리센느가 보란 듯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간 모습은 업계 종사자로서 진심으로 멋지게 느껴진다"라고 밝혔다.
다른 가요 관계자 B씨는 "중소 기획사의 희망으로 보여서 고무적인 내용인 것 같다. 기존 역주행과 다른 점은 일단 음악에 한국적인 요소가 많아 쉽게 듣고 따라 부르기 좋아 친숙하다는 거다. 마케팅도 이 팀이 가진 친숙한 요소를 잘 파고든 것 같다. 리센느 효과로 한국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돋보이는 노래가 당분간 K팝 시장에 발표될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본다"라고 전했다.
그룹 뉴진스(NewJeans)가 대표주자로 활약했던 '세련된 이지 리스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리센느의 행보가 주목된다는 시각도 있다. 랜디 서 평론가는 리센느가 2024년 아이돌 음악 웹진 '아이돌로지'가 선정한 올해의 신인에 포함된 점, '러브 어택'이 실린 '씬드롬' 앨범이 음악 비평 웹진 '이즘'에서 4.5점을 받고 '올해의 앨범'에 든 점을 예로 들어 "평단에서는 이미 인정받는 팀이었다"라고 밝혔다.
"산뜻하고 세련된 알앤비(R&B)에 베드룸 팝 같은 위스퍼링(속삭임) 창법의 음악으로 첫인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뉴진스를 언급한 랜디 서 평론가는 "리센느는 뉴진스가 선보이던 '세련된 이지 리스닝'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아 달리는 팀이라고 본다. 뉴진스를 대체했다기보다는, 그 '세련된 이지 리스닝' 음악이 여전히 트렌디하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팀"이라고 설명했다.
눈부신 성과를 이뤄낸 리센느의 '다음'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예미 평론가는 "리센느는 유튜브 채널의 성공과 음원 역주행을 계기로 팬덤이 크게 확장됐으니, 앞으로도 그간의 방향성을 잇는 준수한 퀄리티의 음악과 무대로 신뢰를 더 쌓는다면 크게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희아 평론가는 "갑작스럽게 성공 서사를 획득한 만큼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고, 동시에 엔터테인먼트적으로도 즐길 거리를 선사해야 하는 팀이 되었기 때문에 이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생겼다. 이 두 가지를 잘 충족한다면 한국 콘텐츠 시장에 유의미한 성공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요 관계자 A씨는 "많은 중소 기획사가 여전히 대형 기획사의 제작 방식과 마케팅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려 한다. 자본도, 인력도, 브랜드 파워도 다른데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려 하니 처음부터 체급이 안 맞는다"라며 "앞으로도 큰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대형 기획사 방식을 정답처럼 받아들여 비슷한 제작과 마케팅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작은 성공을 만들어내지 못한 팀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작은 성과를 쌓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팀만의 경쟁력을 만들어가야 한다. 철저한 기획과 단계적인 성장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부연했다.
김진우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최근 역주행으로 확보한 트래픽을 팬덤 크기를 키우거나 대중성 증가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리센느의 과제다. '체급 상승'을 위해 최대한 다양한 미디어에 나가 소비자 접점을 늘리고, 이를 통해 '대세 걸그룹' 이미지를 더 확고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