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상처를 꾸준히 문학으로 다뤄온 고시홍 작가가 새 소설집 '동백꽃 무덤'을 펴냈다.
'동백꽃 무덤'은 표제작을 비롯해 '할마님의 땅', '무등이왓의 똥돼지', '문전제', '왕돌거리의 늙은 폭낭', '청춘다방', '족보' 등을 묶은 작품집이다. 작가는 제주4·3을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도 공동체 안에 남아 있는 기억과 책임의 문제로 다시 불러낸다.
표제작 '동백꽃 무덤'은 제주4·3과 여순사건을 '동백꽃'이라는 상징으로 연결한다. 여수 만성리 형제묘와 제주의 섯알오름 학살터를 마주 놓으며, 국가폭력이 제주라는 한 지역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고,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민중을 제거하려 했던 해방공간의 폭력이 한반도 곳곳에서 작동했다는 문제의식이다.
'할마님의 땅'은 곤을동 초토화 마을 터를 중심에 둔다. 주인공 김나무는 제주4·3 유적지로 남은 곤을동을 치욕과 불명예의 공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할머니의 유언을 통해 그 땅을 상속받는 순간, 버려진 죽음의 공간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바뀐다.
'무등이왓의 똥돼지'는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표현을 다시 묻는다. 소설 속 인물은 그곳이 분실된 땅이 아니라 "폐기한 땅"이라고 말한다. 국가폭력으로 사라진 마을과 쫓겨난 사람들의 자리를 복원하려는 작가의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소설집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히 나누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문전제'는 제주 전통 제례와 신화를 끌어와, 4·3이 공동체 내부에 남긴 복잡한 상처를 들여다본다. '왕돌거리의 늙은 폭낭'은 토벌대 중대장과 강제 결혼해야 했던 여교사의 삶을 통해, 죽음의 권력이 개인의 몸과 선택을 어떻게 짓눌렀는지를 보여준다.
고시홍 지음 | 도서출판도화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한 박형서 작가가 13년 만에 펴낸 새 장편소설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는 2023년 '문학사상'에 연재한 작품을 다듬어 묶은 소설로, 작가가 10여 년에 걸쳐 구상과 자료 조사를 이어온 작품이다.
소설은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노인복지관에서 일하게 된 김철국이 한 노인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다른 노인들에게 무자비하게 맞고 있던 박복대라는 노인이다. 이상하게도 박복대의 상처는 빠르게 아문다. 그는 김철국에게 "나는 죽도록 맞으며 살아왔다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생애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1930년대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박복대는 어릴 적 신병을 앓은 뒤 기이한 회복 능력을 얻는다. 아무리 맞고 찔리고 뼈가 부러져도 금세 낫는다. 그러나 그 능력은 축복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깝다. 그는 평생 이유 없이 맞고, 국가와 시대가 만들어낸 폭력의 한가운데로 계속 밀려 들어간다.
박복대의 삶은 해방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적 장면들을 차례로 통과한다. 한국전쟁, 전후 빈곤, 자해 공갈과 부랑, 광주의 민주화 항쟁,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1987년 서울의 시위와 고문까지 이어진다. 소설 속에서 박복대를 때리는 것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 국가가 만든 폭력의 구조다.
작품은 참혹한 수난극이지만 무겁게만 흐르지는 않는다. 박형서 특유의 익살과 과장, 시니컬한 유머가 폭력의 장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끔찍한 장면을 읽으면서도 독자가 책장을 넘기게 되는 힘은 비극을 해학으로 끌어안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있다.
소설은 국가란 무엇인지, 국민과 국경은 무엇인지, 사람은 왜 사람을 때리며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동시에 폭력의 기억 속에서도 끝내 인간 곁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붙든다. 박복대가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이유는 그가 만난 몇몇 사람들의 작은 온기 때문이다.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