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에서 결말은 이미 정해진다. "결국 그녀는 죽고, 그만이 홀로 남았다." 알레한드로 삼브라의 '분재'는 사랑이 끝난 뒤 남은 시간과 기억을 따라가는 짧고 강한 소설이다.
2006년 발표된 이 작품은 삼브라의 첫 산문 작품으로, 출간 당시 칠레비평가협회상을 받으며 작가의 이름을 세계 문학 독자들에게 알렸다.
소설의 중심에는 훌리오와 에밀리아가 있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스페인어 통사론 시험을 준비하다 가까워지고, 제대로 읽지도 않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고 말한 거짓말을 계기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이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훌리오는 유명 작가의 원고를 타이핑하는 일을 맡았다가 실패하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분재'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에밀리아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허름한 골목을 배회한다.
제목의 '분재'는 사라진 사랑이자 되찾은 기억이고, 동시에 훌리오가 키워내는 한 편의 소설이다. 삼브라는 사랑의 실패와 문학적 허세, 독재 시대를 통과한 세대의 부서진 기억을 108쪽 안에 압축한다.
1975년 칠레 산티아고주 마이푸에서 태어난 삼브라는 시인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나무들의 은밀한 생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칠레의 시인' 등을 발표하며 로베르토 볼라뇨 이후 칠레 문학의 독창적인 목소리로 평가받아 왔다.
알레한드로 삼브라 지음 | 엄지영 옮김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