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북쪽은 늘 위에 있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국경선이 그어져 있다. 매일 접하는 세계지도는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구형인 지구에는 원래 위아래가 없다. 바다와 하늘에까지 그어진 경계선은 또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하는 세 권의 책, 제리 브로턴의 '지리의 기원'(알에이치코리아), 델핀 파팽·브뤼노 테르트레·세마르탱 라보르드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지도책'(윌북), 마스다 유리야의 '국경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날)이다. 세 책 모두 방위와 국경이라는 렌즈로 세계사와 국제정세를 다시 읽는다.
'지리의 기원'은 동서남북 네 방위가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는 절대 기준으로 자리 잡았는지 추적한다. 저자 제리 브로턴은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지도가 북쪽을 위에 두는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 질서는 종교와 정치, 항해술과 지도 제작, 제국주의가 오랜 시간 맞물리며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책이 그리는 방위의 역사는 단순한 좌표 이상이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자 문화적 기원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남쪽은 제국주의 경제 질서와 얽힌 방향으로 읽힌다.
북쪽은 번영과 현대성의 상징이자 동시에 빈곤과 후진성을 가르는 기준으로도 쓰였다. 서쪽 역시 지리적 방향을 넘어 '서구'라는 정치적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브로턴은 네 방위 모두가 문화와 언어적 규칙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지도책'은 국경이라는 키워드로 현재진행형인 국제 분쟁을 짚는다. 유럽 국제정세 전문가와 '르 몽드' 지도 제작진이 함께 만든 이 책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가르는 장벽, 남중국해 인공섬을 둘러싼 영유권 다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국경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이 책에서 국경은 단순히 땅을 나누는 선이 아니라 전쟁과 협상, 식민 지배와 자원 경쟁, 권력의 이해관계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로 그려진다.
해양법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바다를 함께 쓰던 시대에서 바다를 나누는 시대로 넘어갔다고 책은 짚는다. 흥미로운 사례도 눈에 띈다. 에스토니아의 178번 도로는 러시아 영토를 잠시 지나가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통행이 허용된다. 1945년 런던의 클라라지스 호텔 스위트룸 212호는 단 하루 유고슬라비아 영토로 양도된 적도 있다.
'국경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는 국제뉴스 입문서에 가깝다. 전 세계 40여 곳의 국경 현장을 취재한 저널리스트 마스다 유리야의 글에, 국제정세 해설가 이케가미 아키라의 설명이 더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아프리카의 직선 국경, 베를린 장벽 등이 국경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엮인다.
구체적 사례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겪으며 국경 수호 의식이 유독 강한 나라로 소개된다. 오키나와는 한때 일본 본토로 가려면 여권이 필요했던 곳이었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사들인 알래스카는 처음엔 황무지 취급을 받았지만, 이후 수산자원과 천연자원, 금이 잇따라 확인되며 가치가 뒤바뀌었다. 아프리카 곳곳의 직선 국경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분할선이 독립 이후에도 그대로 남은 흔적이다.
한국 독자에게는 판문점 이야기가 특히 가깝게 다가온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 안에는 군사분계선이 지나가며, 방 안에서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 잠시 한국에서 북한으로 '월경'할 수 있다. 저자는 스마트폰 위성항법장치(GPS)가 북한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위치를 '북한'으로 표시했다고 적었다.
세 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지도를 다시 보게 만든다. '지리의 기원'이 동서남북이라는 방향의 질서 자체를 캐묻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지도책'은 지도 위 경계선과 국제정세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국경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는 현장 취재를 따라가며 국제뉴스의 맥락을 짚어준다.
지도는 흔히 세계를 단순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도구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 책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그 지도 한 장 한 장에 방향을 정한 사람들과 선을 그은 권력, 그 선으로 인해 갈라진 사람들의 역사가 함께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지리의 기원
제리 브로턴 지음 |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지도책
델핀 파팽·브뤼노 테르트레·세마르탱 라보르드 지음 | 이수진 옮김 | 윌북
■국경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
마스다 유리야 지음 | 이케가미 아키라 해설 | 한호정 옮김 |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