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기업 인수를 늘리고 있다. AI 호황으로 확보한 막대한 현금이 투자와 인수합병(M&A)의 실탄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한국 기획재정부 자료를 인용해 올해 한국 기업이 지출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작년 동기 보다 2배가 넘는 102억 달러(약 15조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5년 만에 최대 규모다.
이런 흐름은 AI 인프라 구축의 가장 큰 수혜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끌고 있는데, 이 두 기업의 올해 영업이익은 4천억달러(약 600조원) 정도로 역대 최고치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AI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기업 '주타코어'의 1억 달러(약 1460억원) 규모의 펀딩라운드에, 지난해는 AI 반도체 기업 '그록'의 7억 5천만 달러(약 1조 1천억원) 규모의 투자에 참여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월 '미국의 혁신기업들'에 100억 달러(약 14조 6천억원)를 투자·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에도 미국 스타트업 '아비세나'의 1억 2천만달러(약 1760억원)의 펀딩 라운드에 지원했다.
지난해 헬스케어 플랫폼 '젤스(삼성전자)' 인수 합의, '원엑시아(두산로보틱스)' 인수 등이 한국 기업의 최근 인수 사례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조선, 로봇, 바이오테크, 첨단 제조업 분야의 기업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M&A를 통해 미국 현지 역량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JP모건의 장태원 북아시아 M&A 공동책임자는 "수년 전만 해도 현금이 풍부한 중국 기업들이 웃돈을 치르고 서방 자산을 적극 매입했지만미·중 관계 변화로 사실상 막힌 상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이 한국 기업의 미국 M&A 황금기다. 강력한 현금 흐름과 공급망 리쇼어링의 필요성, 시장 접근성 확보 요구 때문에 이들이 더 크고 변혁적인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인수·합병(M&A) 담당 부사장 수실 바티자는 "AI가 전세계 M&A 거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은 혁신의 발원지였고 아시아 쪽에서는 한국이 그 중심이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