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생 김유진씨(가명)는 지난해 12월, 대학원에서 생물공학 석사를 마친 후 기나긴 취업준비 끝에 취직에 성공했습니다. 화장품 연구원으로 입사한 유진씨는 직장생활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수습 기간이 끝나기 고작 사흘 전, 회사는 "(직무에) 안 맞는 것 같다"며 "타지역 공장으로 내려가거나 시말서를 쓰라"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이사를 하기 어려웠던 유진씨는 결국 퇴사를 택했습니다.
취직 전 이미 생활비와 보증금 대출로 인해 6천만 원 가량의 채무가 있었던 유진씨. 퇴사를 기점으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자 카드값이 밀리기 시작한 겁니다. 월세와 식비 등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은 최소 120만 원, 거기에 이전에 썼던 카드 빚이나 대출금을 모두 합하면 매달 나가는 돈은 215만 원 남짓의 월급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더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유진씨는 결국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비단 유진씨만의 일은 아닙니다. 개인회생을 시작한 2030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빚투'도 '영끌'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열심히 살아오던 평범한 청년들은 왜 회생법원을 찾게된 걸까요?
회생법원에 줄 서기 시작한 '낯선 얼굴'들
개인회생은 지급불능 상태에 있는 사람이 일정한 소득을 얻고 있을 경우에 3~5년간 일정한 금액을 갚으면 채무를 면제받는 제도입니다. 회생파산 전문 박기태 변호사는 "최저 생계비(약 154만 원,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의 60%)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전부 빚 갚는 데 투입해 3년 정도를 산다면, 나머지 빚은 탕감해주는 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회생법원에서 개인회생 절차를 개시한 2030 청년은 2022년 6913명에서 이듬해 9171명으로 한 해 만에 33% 급증했고, 이후에도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습니다. 개인회생 개시자 10명 중 4명(41.8%)이 이제 막 경제활동을 시작한 나이의 청년입니다.
과거에는 흔히 사업이 무너진 50대, 퇴직금까지 날린 60대가 주로 회생파산을 신청하기 위해 회생법원을 찾았는데요. 이제는 회생법원에 2030세대가 줄을 서고 있는 겁니다. 박 변호사는 "한 3, 4년 전만 하더라도 50~60대 넘어서 새 직업을 구하기 힘들거나 사업에 실패한 분들이 많았다"면서 "언젠가부터 전체 회생 사건의 절반 정도가 20·30대"라고 말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이러한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이게 되겠어?' 하는 무기력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트리거' 하나로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
회생이 필요한 청년들이 늘어난 이유는 다름 아닌 '생활비' 때문입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2025년 개인회생을 신청한 만 29세 이하 청년 중 '청년재무길잡이'를 이수한 1025명을 조사한 결과, 67.9%가 처음 빚을 낸 이유로 생활비를 꼽았습니다. 빚을 진 채로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거나, 겨우 취직을 하더라도 갑작스런 실직·이직 등으로 소득 공백이 생기면서 빚이 불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사건 하나는 방아쇠가 되곤 합니다. 박 변호사는 "이런 상태에서 작은 사건 하나만 터지면 바로 문제가 된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추행으로 몇 달 쉬어야 하거나, 계약이 끝나거나 해고를 당하는 것처럼 100만~200만 원 규모의 자잘한 사건 하나가 빚을 걷잡을 수 없이 불린다"고 밝혔습니다.
빚을 갚아보려는 시도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박 변호사는 "확실한 투자처가 있다며 돈을 빌려 더 크게 넣었다가 잃고 나면, 오히려 '에라 모르겠다'며 돈을 써버리는 경우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부업 같은 걸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보이스피싱 사기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진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명의 도용 사기를 당한 겁니다.
개인회생 택한 청년들, 욕 먹어야 할까요?
개인회생을 택한 청년들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해서, 노력해서 갚으면 되는 거 아냐?", "나는 열심히 갚고 있는데, 왜 국민 세금으로 개인의 빚을 갚아줘야 하냐"고요.하지만 개인회생을 택하게 되는 청년들의 현실은 그 오해와 사뭇 다릅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빚을 갚으려 노력했지만,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개인회생을 택하게 됩니다.
박 변호사는 "실제로 검토해 보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개인회생을 안 하려고 노력했던 이들"이라며 "'제도를 악용해서 약삭빠르게 해보자' 이런 사람들은 훨씬 적고, 안 해보려다가 실패한 청년들이 훨씬 많다"고 말합니다.
국가가 세금으로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개인회생 제도는 국가가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은행 등 채권자에게 '여기까지만 받으라'고 명령하는 제도입니다. 도박이나 사행성 투자 등으로 인한 빚이라면, 심사 절차가 더욱 엄격해집니다.
"개인회생, 잘 죽고 잘 부활하는 일"
개인회생은 단순히 빚을 탕감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청년들에게 '생의 가능성'을 다시 부여해주는 제도입니다. 유진씨를 일으켜 세운 것 또한 개인회생 제도였습니다. 더이상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던 유진씨는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희망을 보았습니다.
유진씨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게 제일 어려웠다"면서 "(개인회생을 신청한) 지금은 실제로 내가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제시가 되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다 갚고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유진씨는 원래 일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다시 취업 준비도 시작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 변호사는 "사람은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며 "현재 내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하고, 회생·파산이라는 제도를 통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한 사회의 성실한 소비 주체이자 생산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생파산은 잘 죽는 일이고, 이제 부활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죽고, 제대로 부활하게 하는 것이 바로 개인회생제도의 의의죠."
※2030 개인회생과 관련한 생생한 목소리, CBS 씨리얼 채널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10명 중 4명이 2030이라는 요즘 회생법원. 직접 가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