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임솔아, 이유리·신이인…SF로 묶인 소설과 시

SF가 이어붙인 다섯 개의 세계…'SF 소설×시'

윗줄 왼쪽부터 SF 소설 작가진 천선란, 이유리, 현호정, 예소연, 김희선. 아랫줄 왼쪽부터 SF 시 작가진 임솔아, 신이인, 임승유, 유선혜, 김승일. 허블 제공

소설가 한 명과 시인 한 명이 짝을 이뤄 한 권의 책을 썼다. 한 사람은 소설을, 다른 한 사람은 시를 썼다. 둘을 이어 붙인 접착제는 SF다.

SF 전문 출판사 허블이 'SF 소설×시' 세트를 출간했다. 천선란과 임솔아, 이유리와 신이인, 현호정과 임승유, 예소연과 유선혜, 김희선과 김승일이 각각 한 팀이 되어 모두 다섯 권의 책을 만들었다. 각 권에는 SF 소설 한 편과 SF 시 일곱 편, 그리고 두 작가가 SF와 서로의 작품에 대해 답한 '5문 5답'이 실렸다.

소설과 시가 한 권에 나란히 놓이는 일은 흔치 않다. 서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시는 멈춰 선 자리의 감각을 더 오래 붙든다. 허블의 이번 기획은 그 차이를 지우기보다 그대로 살린다. 한 권 안에서 시의 공백은 소설의 이야기를 낯설게 만들고, 소설의 서사는 시의 빈자리를 조심스럽게 채운다.

이 기획에서 SF는 우주선이나 외계 생명체, 인공지능(AI) 같은 소재에만 머물지 않는다. 허블은 SF를 장르나 형식이라기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로 설명한다. 그래서 다섯 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우주선, 몸속의 외계 생물, 부재한 존재, 인공지능 프롬프트,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내 안에만 남은 감각이 각각의 출발점이 된다.

천선란과 임솔아의 '선 끝에'는 우주선을 중심에 둔다. 천선란의 소설에서 우주선은 애도의 장소다. 블랙홀에 붙들려 아주 느리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홀로 늙어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임솔아의 시에서 우주선은 무덤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명이 다한 우주선들이 가라앉은 심해에서 화자는 창문에 부딪히는 해양 설을 바라본다.

이유리와 신이인의 '외계 생물의 잠'은 몸 안으로 들어간다. 이유리의 소설 '냐츠'는 한 남자의 귓속에서 15년을 산 외계 생물을 진료하는 의사를 따라간다. 이 상상은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명에서 출발했다. 신이인의 시는 반대로 나를 향한다. 진료실과 극장, 기계 앞에 놓인 화자들은 관찰당하고 진단받으며 자신의 감각을 다시 묻는다.

허블 제공

현호정과 임승유의 '청포도를 줄게'는 지금 여기에 없는 존재를 부르는 책이다. 현호정의 소설은 먼 행성으로 떠난 아버지가 지구에 남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띤다. 그 편지가 빛의 속도로 도착할 즈음, 아이는 이미 늙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임승유의 시는 '숙모'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부른다. 부재한 사람을 불러내는 방식이 소설과 시에서 다르게 울린다.

예소연과 유선혜의 '출력되는 마음'은 인공지능 프롬프트를 붙든다. 예소연의 소설에는 직업과 가치관을 설계한 프롬프트를 사람의 의식에 삽입하는 시술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열망이 어디까지 자기 것인지, 어디부터 심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유선혜의 시에서는 몸속으로 들어온 무언가가 밀어내야 할 침입자가 아니라 어느새 자신을 이루는 존재가 된다.

김희선과 김승일의 '천사가 지구 옆을 스쳐 갈 때'는 사라졌지만 나에게만 남은 것을 다룬다. 김희선의 소설에서 영화감독인 주인공은 세상 어디에도 흔적이 없는 '영주'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영주가 진짜라면 세계가 가짜이고, 세계가 진짜라면 영주는 없는 셈이다. 김승일의 시에서는 세상에서 지워졌지만 화자의 머릿속에만 남은 감각이 등장한다.

다섯 권을 나란히 놓으면 이번 기획의 독특함이 선명해진다. SF는 미래를 예측하는 장치가 아니라,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흔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몸 안에 들어온 생물, 의식에 심어진 프롬프트, 지구에 닿지 못하는 편지, 나만 기억하는 이름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향한다. 무엇이 나를 이루고, 무엇이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가.

'5문 5답'은 이 기획의 또 다른 읽을거리다. 소설가는 시를 읽고 자신에게 없던 감각을 발견하고, 시인은 소설을 읽으며 낯선 서사의 방향을 따라간다. 누군가는 상대의 글을 먼저 읽고 이어 썼고, 누군가는 같은 키워드를 붙잡고 각자의 자리에서 썼다. 중요한 것은 협업의 방식이 모두 달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마다 연결의 농도도 다르다.

천선란·임솔아·이유리·신이인 외 지음 |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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