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후배 선수들이 공부를 놓지 않으면 좋겠어요."
서울대학교 육상선수 출신 '최초 전국대회 금메달리스트', 박다윤 고수(高手)는 달리기만큼이나 공부를 포기할 수 없다.
운동과 공부, 두 가지를 모두 놓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박 고수를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서울대에 입학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중간고사 준비로 훈련 시간이 부족했던 전국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울대학교 졸업을 앞둔 박 고수는 이제 자신의 경험이 후배 선수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페이스메이커'는 최근 그녀가 그리는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대에서 육상선수로 살아남기
"고등학생 시절 전교 1등도 해봤고, 4등 밖으로는 벗어난 적 없는 것 같아요."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를 돌이키면 아직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주로 트랙 위에서 고교 시절 3년을 보냈는데, 펜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원하던 서울대에 입학했다.
"무척 행복했어요. 합격 조회를 해야하는데 떨려서 결과를 보지도 못했어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클릭을 했는데, '합격'이라는 글자가 떠서 부모님께 바로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나요."
엘리트 육상선수로서의 길만 걷겠다면, 굳이 대학교에 진학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나 여자 선수들은 청소년 시절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면, 성인이 되고 바로 실업팀에 입단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부모님께서 저를 '엘리트 선수'까지 생각은 안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정 하고 싶으면 공부랑 같이 하고, 대학교 가서 해라'라는 조건을 두셨어요. 그러다보니 공부도, 육상도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서울대에는 선수 육성을 위한 체육특기자 전형이 없다. 박 고수가 재학 중인 체육교육과 역시 일반적인 '체대'가 아닌 사범대 소속이다.
따라서 공부로 서울대에 입학한 선수들이 전국 대회에 나가 성적이 내는 건 쉽지 않다. 훈련 환경도 일반 체육 대학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서울대 육상부를 두고 '동아리 수준'이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일단 훈련량이 많이 부족해요. 선수로서 살아남으려면 정말 굳은 의지가 필요해요. 낮에 공부하고, 저녁에 운동하면서 4년을 보냈어요. 유혹을 이겨내는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해요."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1학년이던 2022년 4월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대학부 2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서울대 육상부 최초 전국대회 금메달이었다. 활약은 4년 내내 이어졌다.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메달만 10개 가까이 된다.
하지만 '서울대 육상선수'로서의 삶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이 운동을 그만두는 모습을 수없이 봐야했기 때문이다.
"좀 외로워요.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어요. 동기들 중 선수로 남은 친구가 거의 없어요. 공감대를 형성할 사람이 없어서 조금 외로워요. 고등학생 때는 그래도, 다 같이 운동하고 다 같이 공부하니까 재미가 있었는데 대학교에서는 그게 아니었어요."
비록 운동은 그만뒀지만, 동기들은 박 고수가 전국 대회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했다고 한다.
"많은 동기들이 다 같이 제 경기를 보면서 응원해 줍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축하한다'는 말도 늘 해줘요."
"스포츠 기자가 돼서, 육상의 재미를 알리고 싶어요"
4년을 알차게 보낸 박 고수는 서울대 졸업 이후 어떤 삶을 계획 중일까.
일단 국내 단거리 육상 실업팀 진천군청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공부에서 손을 뗄 생각은 없다.
선수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종목이기에, 은퇴 후 삶까지 미리 대비하겠다는 생각이다. 2년 정도 더 선수 생활을 한다해도, 20대 중후반 밖에 되지 않는 나이다.
"제 전공을 살려 체육교사를 희망해요. 그리고 스포츠 기자도 목표로 두고 있어요. 둘 중 더 원하는 건 스포츠 기자예요. 아버지께서 기자셔서, 어릴 때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만약 스포츠 기자가 된다면 가장 먼저 다루고 싶은 종목 역시 육상이다.
"정말 재미있는 종목인데,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육상이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열심히 현장을 누비며 많은 양의 기사를 쓰고 싶어요. 편견을 깨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각종 편견 깨 온 박다윤…더 먼 미래 향해 달린다
박 고수와 인터뷰를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편견', 그리고 '미래'였다.
운동선수는 공부를 못한다? 서울대생은 운동을 못한다? 박 고수는 그 편견들을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하나씩 깨왔다. 서울대 최초 전국대회 금메달도, 서울대학교 졸업도 모두 그 과정의 결과였다.
육상은 재미없다? 이제 또 다른 편견을 깨기 위해 출발선 앞에 선다. 당장은 실업팀 선수로서, 언젠가는 스포츠 기자로서 육상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그때 닥쳐서 허둥대다가, 제가 진짜 잘하는 일을 할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결승선을 빠르게 통과하는 선수는 많다. 하지만 결승선 이후의 삶까지 준비하며 달리는 선수는 흔치 않다. 박 고수는 오늘도 두 개의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