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역사 쓴 '육상 전국 1위'…공부 잘하는데, 운동도 1등인 비결[페이스메이커]

[러닝 고수를 찾아서…'서울대 스프린터' 박다윤①]

스타트 라인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 박 고수 제공

"저도 제가 1등을 해서 깜짝 놀랐어요."

공부와 운동은 양립할 수 없다는 편견을 부순 선수가 있다.

2022년 4월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대학부 200m 결승. 가슴에 '서울대학교'를 달고 뛴 선수가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주인공은 박다윤 고수(高手)였다. 최종 기록 25초 33.

서울대 육상부 역사상 최초 전국 대회 금메달이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전국 무대 메달을 쓸어 담았다. 서울대 신입생이던 2022년부터, 졸업반이 된 2026년까지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메달만 10개 가까이 된다.

'서울대생은 공부만 잘한다' VS '운동선수는 공부를 못 한다'

박 고수는 두 가지 편견을 모두 깨고 싶었다. '페이스메이커'가 그녀의 러닝 스토리를 들어봤다.

우연히 발견한 달리기 재능,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2021년 전국체전 당시 고등부 인천광역시 계주팀으로 나섰던 박 고수(왼쪽에서 두 번째). 대한육상연맹 제공

사실 박 고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눈에 띄는 육상 유망주였다. 인천체육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대회에 나가면 늘 우수한 성적을 남겼다.

언제부터 자신에게 달리기 재능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을까.

"어릴 때 남들 다 가는 태권도 학원도 안 다녔었어요. 피아노 정도만 배웠어요. 제가 선수를 할 정도로 잘 뛴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고 살았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육상을 시작할 기회를 맞았다. 학교 운동회 계주만 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학교 체육 선생님이 재능을 알아챘다.

"운동회 때 항상 달리기 1등을 했고, 마지막 주자를 맡았어요. 체육 선생님께서 '육상부를 새로 만들 건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때부터 달리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재능은 재능이었다. 박 고수는 인천시에서 열린 육상 대회에 한 번 나가봤는데 2등 시상대에 올랐다. 그렇게 꽃피우기 시작한 육상 인생. 인천체고 수석 입학 후에도 기록은 좋았다.

"고3 첫 시합이 제일 기억 나요. 그때 코로나가 유행하던 때라 훈련을 제대로 못 했어요. 고2 시절 1년을 부상 탓에 통째로 날렸어서, 큰 기대를 안 하고 400m를 뛰었는데 개인 최고 기록(56초 80)을 세웠어요."

1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외려 성적은 수직 상승한 것. 박 고수는 국가대표팀 상비군으로 뽑힐 정도의 실력까지 끌어올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상비군 생활을 했어요. 상비군은 보통 고등학생 선수들로 구성돼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시합을 뛴 건 아니에요. 그냥 국가대표 선수들이랑 함께 동계 합숙 훈련 정도."

'서울대 최초 전국 대회 금메달리스트'

박다윤 고수가 이달 초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백제왕도 익산 2026 전국육상경기대회' 여자 대학부 100m 결선에서 12초67로 우승을 차지했다. 박 고수 제공

주목받기 시작한 건 단연 서울대 입학 후였다. '서울대 육상선수'라는 타이틀도 놀라운데, '전국 1등'까지 차지했기 때문이다.

입학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서울대 역사를 썼다.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200m 여자 대학부 경기에서 1위에 올랐다. 이 대목에서도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진심으로 1등을 할 줄 몰랐어요. 고등학생 때는 매일 훈련을 했으니까, 성적이 좋은 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된 후에는 저를 잡아주는 정식 코치님이 없어서 운동을 그렇게까지 체계적으로 하지 못했어요."


서울대에는 이전처럼 자신을 전담 지도해 주는 코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비해서 훈련 환경이 열악했음에도, 지도 교수와 조교들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됐다. 박 고수는 자신의 재능에 노력을 더해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를 준비해야 해서, 남은 3주 동안 훈련에 매진했어요. '서울대'를 가슴에 달고 뛰는 게 제 로망이었어요. 메달을 딸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1등을 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박 고수는 2022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수확했다. 2023년에는 금1, 은1. 2024년에는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2025년에는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땄다.

졸업 후에도 선수 생활 이어진다…진천군청 입단

인터뷰 중인 박 고수. 이우섭 기자

서울대 졸업을 앞둔 박 고수는 육상을 놓지 않을 계획이다. 단거리 육상 실업팀 진천군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진천군청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서지현 등을 보유한 강팀이다.

박 고수의 목표는 명확하다. 자신의 주 종목인 400m에서 55초대에 진입하는 것, 그리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팀에 들어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기는 해요. 그래도 일단 개인 최고 기록을 깨고 싶어요. 55초대를 꼭 들어가고 싶어요. 그 이상 가면 더 좋고요."

"제가 한창 잘 뛰던 때에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선발됐던 국제 시합이 다 취소됐어요. 내심 그게 아쉬웠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건 모든 선수의 로망이에요. 작은 대회라도 국제 시합에서 뛰어보고 싶어요."


'러닝 붐'이 흐뭇한 스프린터…"이 훈련은 꼭!"

박 고수는 지난 5월 말 열린 '러닝의학심포지엄 2026'에서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해당 SNS 캡처

박 고수는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러닝 붐'에 대해서도 반갑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거리, 단거리 상관없이 달리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서 뿌듯하다는 이유다.

"장거리 러닝을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육상 경기도 접하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더 잘 뛰기 위해 다른 영상을 찾아보시고, 그러면서 연관 알고리즘을 통해 육상 대회까지 보시더라고요."

단거리 선수로서 장거리 러너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뛰시는 분을 봤는데, 자세가 좋지 않으셔서 알려드리고 싶었던 적도 있어요. 저는 발바닥을 땅에 미는 느낌으로, 러닝머신을 뛰는 것처럼 미는 느낌으로 뛰는 걸 추천드려요. 그러면 다리에 무리가 오지 않으실 거예요."

"스프린트 훈련도 추천드려요. 어쨌든 마라톤도 기록 종목이잖아요. 페이스 조절을 잘 하다가, 때가 됐을 때 한 번에 치고 나갈 힘을 주기 위해서는 스프린트 훈련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훈련 중인 박다윤 고수. 박 고수 제공

박 고수는 더 이상 '서울대 육상선수'라는 특별한 수식어에 만족하지 않는다. 실업팀 유니폼을 입고 새 목표를 향해 다시 출발선에 선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우연히 발견한 재능은 전국체전 금메달로 이어졌다. 대학부를 넘어 국제 대회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뛴다. 그 출발선은 어쩌면 서울대 유니폼을 입고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던 2022년 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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