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손가락 잘려도 "일할 수 있나" 걱정만…테스 씨의 사라진 꿈 ②심장이 멈출 때까지 일했다…미등록 이주노동자, 병원 못 간 이유는? ③"비자 취소시킨다" 협박에 3년 침묵…유학생 노동권 사각지대 ④국내 이주노동자 110만…인권침해 '원스톱 긴급구제' 필요 ⑤'표 계산'에 외면받는 인권… 외국인 노동자엔 없는 '법적 울타리' ⑥15평에 기댄 25명…갈 곳 없는 이들의 '네팔쉘터' (계속) |
네팔 이주노동자 25명의 마지막 쉼터 '네팔쉘터'
네팔인 림부 라잔(40)씨는 지난 2021년 칸첸중가 식당과 쉘터 문을 열었다. 지난 7월 기준 25명의 네팔 이주노동자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농장 기숙사도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쉼터도 아닌 이곳 네팔쉘터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다양하다.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해 도망쳐왔다거나, 일하던 곳이 망해 갈 곳을 잃었다거나, 손가락이 절단돼 해고 당했다는 등 저마다의 애달픈 사연들이 모인 곳이다.
이곳은 군드룩, 팀부르, 킨에마 등 네팔어로 설명된 식재료들이 즐비하다. 발효한 겨자잎, 산초, 발효 콩 등 네팔인들의 필수 식자재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배추와 고춧가루 등이 되겠다.
림부 라잔 씨는 재료들을 꺼내 보이며 "서울에서 네팔 식재료들을 공수해와 요리에 사용한다"며 "네팔 쌀은 비싸서 한국 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전부 네팔 식재료로 네팔 이주노동자에게 음식을 낸다"고 말했다.
오후 12시를 넘어서자 10여 명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칸첸중가'로 모였다. 오늘의 급식 메뉴는 '달밧'이다. 콩 수프와 향신료를 볶아 끓인 채소 요리, 매콤한 돼지고기 볶음 등이 한데 어우러졌다.
성인 남자 2명은 족히 먹을 법한 양의 밥을 깔끔하게 비운 키타(27)씨는 "네팔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며 "충분히 먹지 않으면 저녁 8시 급식 시간까지 배가 고파 충분하게 먹어 둔다"며 미소를 띠었다.
15평 남짓 쉘터…떠나야하는 이들, 대형 캐리어만 가득
식사를 마친 이들은 식당을 끼고 약 50m쯤 이동, 자신들의 쉼터인 '네팔쉘터'에서 휴식을 취한다. 1층은 남자, 2층은 여자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다. 각각 15, 10평 남짓한 곳에 모여있다.숙소 출입구엔 수십 개의 대형 캐리어가 가득했고, 사실상 사용이 불가한 테이프 붙여진 에어컨이 눈에 띄었다. 손때 묻은 벽지에 기댄 3명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작은 노트북으로 '스위스와 알제리' 경기를 함께 보고 있었으며, 다른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여러 개의 간이 매트리스의 먼지를 털어냈다.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네팔하우스의 25명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이곳 네팔쉘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루빨리 직장을 구해 출입구 캐리어를 들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식당과 임시거처를 운영하는 라잔 씨는 1,2층 숙소 월세 100만 원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이 이 곳에 머물기 위해 내는 돈은 1년에 5만 원이다.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식당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금으로 월세를 충당하고 있다. 라잔 씨는 "돈 안내고 도망가는 이주노동자들도 종종 있었다"고 웃었다.
비인가 시설 네팔쉘터…"자유롭게 오갈 수 있길"
네팔쉘터는 사실 '비인가 시설'이다. 라잔 씨가 숙소 공개만큼은 난색을 표했던 이유기도 하다. 네팔인 홀로 공식 쉼터 기준을 맞출 만큼의 시설과 인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3개월 내로 새로운 일터를 구하지 못하면 비자가 취소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공식 쉼터 입소 절차를 밟는 건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라잔씨는 "정식으로 쉼터를 운영하려면 직원도 고용하고 시설을 보강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곤란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머무는 임시 거처인 만큼, 쉘터가 공식화되면 이들이 오히려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이 갈 곳을 잃었을 때 주로 모텔에 거주하는 데, 그 비용이 비싸서 거의 이용하지 못한다"며 "쉼터를 마련해줘서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만큼, 언제든지 쉬고 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거듭된 요청에 라잔씨는 쑥스러운 듯 네팔 전통 북 '마덜'을 연주했다. 양손으로 마덜의 두 면을 번갈아 쳤다. 마덜은 네팔 전통 음악의 '심장'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낮은 소리와 높은 소리가 섞인 고요함이 '칸첸중가'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