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보전사업 제도 개선' 시민단체-정치권 공조 움직임

강원 횡성군 갑천면에 위치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구본호 기자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의 사건을 계기로 국내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집중 조명한 강원CBS 기획보도(7월 20일~22일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의 멸종위기) 이후 제도 개선과 멸종위기종 보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시민들 국민신문고 통해 제도 개선 촉구

28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김유진 강원생태네트워크 공동대표와 전직 환경전문기자 등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 소장 사건에 대한 재검토와 보조금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김 공동대표는 "국가가 마땅히 감당했어야 할 일을 한 개인과 가족의 희생에 떠맡겨 놓고, 그들이 부족한 제도 안에서 어떻게든 사업을 유지해 온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자 그 일부만 떼어내 책임을 묻는다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법적 판단은 법원이 할 일이며, 잘못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면서도 "개인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일과 국가의 책임을 묻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 봤다.

지난 6일 강원 횡성군 갑천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만난 이강운 소장. 구본호 기자

대학이나 대규모 국책 연구기관도 아닌 개인 연구소가 국가가 해야 할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을 오랫동안 떠맡아야 했던 근본적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가는 (민간 보전기관)그들의 성과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 성과가 가능하도록 한 노동과 비용 구조는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냐"며 "현장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가장 약한 개인 연구소에 책임을 집중시키고, 그 책임을 '공정', '투명성', '부패 척결'과 같은 정의로운 말로 포장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의 미숙함이 아닌 권력이 자신의 책임을 지우는 방식의 문제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건을 단순히 연구비를 개인적으로 빼돌린 사건으로 볼 수 없다며, 국가가 민간 연구소에 맡긴 보전사업의 비용 구조와 자부담 방식, 실제 시설 유지비, 행정기관의 정산 기준 사이의 괴리가 장기간 누적돼 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6일 강원 횡성군 갑천면에 위치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이강운 소장 아내 이정옥씨가 멸종위기종 1급인 '붉은점모시나비' 증식을 위해 알을 낙엽에 붙이고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

환경전문기자를 지낸 노영대 환경운동가는 "멸종위기종은 거래와 상업적 이용이 엄격히 제한돼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공익사업"이라며 "매년 사업비의 절반을 민간이 부담하도록 하는 구조는 처음부터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멸종위기종 보전사업과 국가 보조금 시스템을 '제도의 실패'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국고 50%·자부담 50% 구조의 전면 재검토 △멸종위기종 보전에 대한 국가책임 원칙 확립 △민간기관의 부지·시설·인력·전문성에 대한 자부담 인정 △최소 5년 이상의 중장기 국가계획 수립 △현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도개선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이 밖에도 국내 여러 환경단체와 학계, 시민사회단체들은 생물다양성 강화와 멸종위기종 보전 제도 개선 및 국가책임 강화를 촉구하기 위한 공동 연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강운 대법원 상고·정치권도 가세…"국가 책임 다시 따져야"

지난 6일 강원 횡성군 갑천면에 위치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이강운 소장과 아내 이정옥씨가 멸종위기종 2급인 '물장군'의 먹이를 주는 모습. 구본호 기자

최근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을 선고받은 이 소장은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의 공익성과 국가의 구조적 책임을 다시 심리해달라며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한번 구했다.

이 소장은 "멸종위기종 보전 업무는 항소심 판결문에서도 국가가 자기 책임 아래 수행해야 할 책무라고 명시했다"며 "멸종위기종 보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국가의 구조적 책임과 사업의 공익성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원심판결은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이은혜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이 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배우자 이모(67)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개 국책사업을 수행하면서 자부담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차명계좌로 지급한 인건비를 되돌려받거나 허위 정산보고서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약 12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소장 측은 재산상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보조금 전액을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에 사용했다고 주장해 왔다. 또 보조금이 매년 수개월 늦게 지급되는 탓에 개인 자금을 먼저 투입한 뒤 사후 정산할 수밖에 없었다며,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행정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보조금 목적과 달리 인건비를 허위로 기재하고 정산한 행위는 기망과 허위보고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다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두 사람의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헌신과 국가의 책무를 개인이 책임져 온 보전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음을 감형 사유로 반영했다.

재판부는 "해당 업무는 국가가 자기 책임 하에 수행해야 할 책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임에도 총 사업비의 50%에 한해 국비 지원이 이뤄졌다"며 "그나마도 해당 연도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2분기 무렵에나 보조금 교부, 집행이 이뤄지는 등으로 국비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여건 속에서 이 사건 편취금의 상당 부분이 위 연구소 운영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쟁점 기간 초기 보조금 집행 시스템이 온전히 확립되지 않았던 상황 또한 이 사건 각 범행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등 범행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강원CBS의 기획보도 이후 지역 정치권도 제도 개선 필요성에 목소리를 보탰다.

김영숙 강원특별자치도의원은 "멸종위기종 보전은 특정 기관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지방정부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익사업"이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반영한 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기후부가 서식지외보전기관 제도 개선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강원도도 도내 기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정부에 전달하고,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는 지원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강원도는 전국에서도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만큼, 멸종위기종 보전 정책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도의회 역시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보전정책 마련을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의 국민신문고 민원과 정치권의 제도 개선 요구까지 이어지면서 이번 논란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 국가가 민간에 맡겨온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의 구조와 책임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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