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의 주인공보다 그 무대를 지켜 온 사람들, 큰 목소리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들리는 목소리들이 있다. 노회찬재단이 노회찬 8주기를 맞아 펴낸 '우리의 노래가'는 그런 삶 아홉 편을 오래 듣고 적은 구술생애사다.
이 책은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이 지난해 '우리들의 드라마'에 이어 펴낸 두 번째 기록이다. 책 제목은 백창우의 노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에서 가져왔다.
주인공들은 민중음악으로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 자기 이름과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온 성소수자들, 고향을 떠나 한국의 일터와 거리에서 삶을 일군 이들이다.
가수 최도은과 김원중, 꽃다지 기획자 민정연, 게이 무속인 박인, 퀴어 직장인 한열음, 전남 순천에서 서울 노량진으로 올라와 하숙집을 꾸린 정경애,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 웨노웨 흐닌 쏘, 방글라데시 출신 박지환과 자한길 알럼의 이야기가 담겼다.
책은 이들의 삶을 미담으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다. 민중가요가 더는 거리의 중심에 서지 않는 시대, 그 노래를 불러 온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지 묻는다. 성소수자로, 무속인으로,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겪은 차별과 자기 긍정의 시간을 듣는다. 이주 노동자와 이주 배경 주민의 삶에서는 한국 사회가 함께 살아온 30년의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구술생애사는 누군가의 삶 앞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이 책이 기록한 것은 거창한 승리보다 버틴 시간에 가깝다. 살았다는 것, 잃고도 다시 걸었다는 것, 자기 몫의 고통을 넘어 누군가의 곁에 서려 했다는 것. 그 삶들이 모여 제목처럼 하나의 노래가 된다.
영화감독 장항준과 소설가 김탁환이 추천했다. 장항준은 이 책의 이야기들이 "삶이라는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노회찬재단 기획 | 후마니타스
옛 CBS 기자이자 앵커, 정치부장, 보도국장을 지낸 한용상이 딸 한나라와 함께 쓴 회상록 '떠나라 탈출하라'가 출간됐다. 1940년 경북 김천 추풍령 자락에서 태어난 한 언론인이 6·25 전쟁과 유신 독재, 언론 탄압, 투옥과 고문, 캐나다 망명 6년을 지나온 기록이다.
책은 한 개인의 자서전에 머물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한 소년, 기독교 신앙을 만나 신학을 공부한 청년, 독재 권력의 억압과 비리를 방송으로 비판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붙잡힌 언론인의 시간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과 겹친다.
한용상은 9년간 해직 생활을 견뎠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추방돼 망명 생활을 했다. 복직 뒤에는 평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을 수행 취재했고, 훗날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 책이 조금 다른 회상록이 되는 이유는 딸의 목소리다. 아버지의 체포와 부재, 낯선 캐나다 생활, 말하지 못하던 아이가 피아노로 마음을 표현하던 시간들이 한나라의 기억으로 다시 적힌다. 아버지의 회상에 딸의 회상 열다섯 편이 교차하며, 거대한 역사가 한 가정의 식탁과 골목, 아이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표지 그림은 손자 이현중이 그렸다. 아버지가 쓰고, 딸이 기억을 더하고, 손자가 그림을 그린 3대의 기록인 셈이다.
책 제목의 '떠남'과 '탈출'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저자는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고 모세가 억압에서 벗어난 성서의 장면에 자신의 삶을 겹친다. 안락한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라는 명령이, 고향과 방송국, 감옥과 망명지, 다시 돌아온 고국까지 그를 이끌었다는 고백이다.
회상록 말미에서 그는 평생 마이크 앞에서 정의를 말했지만, 발밑의 작은 이들에게 충분히 손 내밀지 못한 아쉬움도 털어놓는다. 보육원 아이들과 자립준비청년 곁에 머문 딸의 삶을 보며, 자신이 다 살지 못한 이웃 사랑을 돌아본다.
한용상·한나라 지음 | 레페토에이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