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시장이 운명을 바꿨다. 부산에서 장사를 하던 청년은 서울 동대문에서 또래 청년들의 모습을 본 뒤 무작정 짐을 싸 서울로 향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 1년 뒤에는 뒤늦게 연기에 도전했다. SBS 드라마 '김부장'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선보인 배우 원현준의 삶이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구 한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과정을 밝혔다.
"부산에서도 다들 열심히 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서울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싶었어요. 서울에 있는 친구 집에 얹혀살았죠.(웃음)"
이어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다가 영화 '사생결단(2006)'을 참 좋아해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당시 개성파 배우들이 주목받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얼굴도 특이하니 해보라고 해서 연기 아카데미 학원에 들어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28세부터 보조 출연으로 현장에 나간 원현준은 경험을 쌓은 끝에 KBS2 드라마 '아이리스(2009)' 오디션을 보고 데뷔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무명 생활이 이어졌고, 나이도 40에 가까워지면서 배우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는 "배우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거 같았다"며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2019)' 오디션을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이게 안되면 미련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원현준은 이 영화에서 장성무당 역을 맡아 주목받으며 이후 SBS 드라마 '김부장'까지 합류하게 됐다. 작품에서 그는 이른바 '땅강아지' 특수임무국(특임국) 국장 강국철 역을 맡았다.
"최대훈 향해 '학 씨' 대사? 애드리브죠" 웃음
원현준이 '김부장'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연출을 맡은 이승영 감독의 선택이 있었다.
그는 "감독님이 제작사 측에 '땅강아지 캐릭터는 이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셨다고 하더라"며 "캐스팅된 이후 감독님이 제가 가진 에너지를 보여주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잘 준비해 보려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워낙에 주요 인물들이 나오다 보니 인물 간의 밸런스가 중요했다. 대본에 충실 하려고 했다"며 "계속 화를 내고 히스테릭한 인물로 나오는데 박진철(윤경호)과 성한수(최대훈)가 저를 땅강아지라고 놀리면서 강국철의 매력을 증가시켜 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경호와 최대훈은 따로 찾아가 원현준을 걱정하기도 했단다. 그는 "그래도 특임국 국장인데 두 사람이 너무 땅강아지라고 놀리다 보니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와 얘기하더라"며 "저는 너무 고마웠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만들어진 인상적인 애드리브도 있었다. 7회 특임국 대원들이 성한수를 데려가는 장면이다.
"땅강아지 캐릭터가 점점 만들어진 거 같아서 그때 최대훈 배우의 '학씨 아저씨'를 살리고 싶었죠. 물어보니 너무 좋다고 해서 '학, 씨' 대사가 나오게 된 거예요.(웃음)"
이어 "벙커 안 장면은 사람이 많아서 정신없이 촬영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화면에 잘 나와 기억에 남는다"며 "강국철이 발을 하나 걸치는 신도 현장에서 만든 애드리브"라고 말했다.
"윤경호,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아버지, 커피값 많이 사신다고"
이번 작품을 통해 소지섭과 처음 호흡을 맞춘 소감도 전했다.
원현준은 "오랜 팬이었다. 본인의 연기뿐 아니라 후배 배우들 캐릭터까지 생각하시더라"며 "액션을 하다가도 터치도 없었는데 늘 걱정해 주셨다. 저한테 크게 다가왔다. 영광이었다"고 강조했다.
현장 분위기 메이커로는 윤경호를 꼽았다.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현장에서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농담도 많이 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며 "에너지가 정말 좋은 친구다. 저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정말 잘 맞는 거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부장'의 인기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많은 응원과 메시지를 받고 있어서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기존 OTT 작품과 달리 지상파에서 공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모님의 반응도 남달랐다고 한다.
"부모님은 OTT를 잘 이용하지 못하셨는데 이렇게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작품이 사랑을 받으니까 너무 좋아하시죠. 아버지가 주변에 커피값을 많이 내고 다니신다고 해요."
그러면서 '김부장'이 자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지도 전했다. 원현준은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리 자체가 예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장면"이라며 "배우로서 다음 단계를 나아가기 위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역할에 대해서는 "그동안 센 인물을 많이 해왔는데 진짜 악인은 해보지 않은 거 같다. 제대로 된 악인을 해보고 싶다"면서도, "휴먼 드라마 장르에서 동네 삼촌 같은 형 역할도 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무명 배우들을 향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원현준은 "정말 뜻이 있고 본인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힘든 과정에서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행복과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김부장' 최종회는 전국 가구 기준 23.0%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된 작품은 글로벌 톱10 TV쇼 비영어 부문 3주 연속 1위에 오르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현재 제작진은 시즌2 제작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