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톰의 코끼리테라스는 거대한 사암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확인한 비밀은 뜻밖이었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암 건축물인 코끼리테라스는, 80퍼센트가 흙으로 만들어졌다."
'앙코르톰의 고고학자들'은 2019년부터 2026년까지 캄보디아 앙코르톰에서 진행된 보존·복원 현장을 기록한 책이다. 한양대학교박물관장 안신원 교수와 세계유산 전문가 이화종 한양대 연구교수를 비롯한 10명의 고고학자가 코끼리테라스와 쫌 사원(프레아프투)을 조사하며 겪은 일을 각자의 목소리로 썼다.
책은 유적 복원 성과만 정리한 보고서가 아니다. 40도에 가까운 열대 몬순의 폭염,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논물, 그 안에서 마주친 물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조사단이 철수 위기에 몰린 순간까지 현장의 시간이 그대로 담겼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팬데믹 시기다. 비행기 길이 막히고 현장 철수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도 유적을 지키기 위한 작업은 멈출 수 없었다. 연구진은 프놈펜 격리 중에도 '방구석 넘버링'을 이어갔고, 몬순 폭우 속에서 유적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천 개의 모래주머니를 쌓았다. 책 속 문장처럼 "코로나는 전 세계를 멈춰 세웠지만 발굴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앙코르톰의 고고학자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관광 엽서 속 앙코르가 아니라, 흙과 돌과 장비 사이의 앙코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수 톤짜리 사암을 들어 올리기 위해 중장비를 다루고, 수만 개의 석재에 번호를 붙이고, 3차원 스캔과 정밀 기록으로 천 년 전 구조물을 다시 읽어낸다. 붓과 삽만으로 설명되던 고고학의 이미지가 현장 기술과 분업, 국제 협력의 세계로 넓어진다.
책의 핵심 성과는 코끼리테라스의 축조 방식 규명이다.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조물의 비밀은 작은 발굴 구덩이에서 시작됐다. 연구진은 테라스 내부의 다층 구조와 토층을 조사하며 크메르 장인들이 흙과 사암을 어떻게 결합해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는지 추적했다. 책은 "앙코르의 비밀은 돌이 아니라 흙 속에 숨어 있었다"고 적는다.
이 기록은 대한민국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의 장면이기도 하다. 6·25 전쟁 이후 국제 원조를 받던 한국이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복원에 참여하는 국가가 됐고, 한양대학교 박물관 고고학 발굴조사팀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보존·복원 사업의 핵심 수행기관으로 현장에 섰다.
저자들은 앙코르 현장에서 고고학자의 일도 다시 배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 익숙한 연구자가 캄보디아의 기후대와 연대 보정 문제 앞에서 혼란을 겪고,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진리"를 깨닫는 대목은 이 책이 단순한 탐사기가 아니라 배움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신원·이화종·소상영 외 지음 | 홍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