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율 관세와 중국의 저가 공세, 탄소중립 규제 강화까지. 포항 경제의 핵심인 철강산업이 복합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과 지역 공동 대응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덕배 한국은행 포항본부장은 최근 CBS 시사프로그램 '이슈철가방'에 출연해 "철강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자동차·조선·방산을 떠받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며 "포항 철강산업의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철강 위기, 지역경제 침체로 직결"
이 본부장은 현재 포항 철강산업이 미국의 관세 인상, 중국산 저가 철강 유입, 탄소중립 규제, 원자재·물류비 상승이라는 '4대 악재'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실제로 국내 철강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5년 7% 수준에서 2024년 2.7%까지 떨어졌고, 포스코 조강 생산량도 같은 기간 4200만 톤대에서 3400만 톤 수준으로 감소했다.
포항 철강산업단지 고용도 1997년 1만 9천 명 수준에서 지난해 1만 3천여 명으로 약 30% 줄어들며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세보다 공급망 정상화가 중요"
미국의 철강 관세에 대해서는 "25%에서 50%로 관세율이 오르는 것보다 관세 면제가 더 중요하지만, 한국만 면제받아도 전체 손실의 대부분은 남는다"고 설명했다.철강산업이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돼 있어 특정 국가만 혜택을 받아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철강뿐 아니라 자동차와 기계 등 철강을 사용하는 하류산업의 피해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공급망 정상화가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추격 거세…수소환원제철이 승부처"
중국의 저가 철강 공세에 대해서는 기술 경쟁력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 본부장은 "미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지만 유럽과 동남아 시장에서는 중국의 점유율과 기술력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며 "저탄소 철강과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 사례가 없는 만큼 성공할 경우 글로벌 철강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과 그린수소 공급이 필요한 만큼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전기요금 경쟁력 확보 시급"
철강업계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과제로는 산업용 전기요금 문제를 꼽았다.이 본부장은 "미국과 중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10원 안팎인데 우리나라는 180원 수준으로 이미 원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로 확대와 수소환원제철이 본격화되면 전력 사용량이 더욱 늘어나는 만큼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 없이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철강을 단순한 쇠퇴 산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이라는 인식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만의 강점 살려야"
포항 철강산업의 구조적 한계로는 포스코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와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를 꼽았다.광양제철소가 자동차 강판 중심의 대량생산 체제로 높은 수익성을 확보한 반면, 포항은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포스텍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인프라와 세계 최고 수준의 숙련 인력은 포항만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포항시·포스코 함께해야 위기 극복"
이 본부장은 철강산업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뿐 아니라 지역 차원의 협력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산업용 전기요금 지원과 저탄소 철강특구 지정, 수출시장 다변화와 함께 포항시와 포스코, 상공회의소, 노동계 등이 참여하는 지역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국은행도 생산과 고용, 수출 등을 상시 점검하는 지역경제 조기경보체계를 운영해 지자체와 함께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포항은 50년 동안 철강도시로 성장하며 세계적인 기술과 인력, 산업 기반을 축적해 왔다"며 "지금의 위기를 철강산업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