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폭염, 살인자 드러내기

연합뉴스

새 집에 이사한 한 가족이 반려견과 함께 통째로 사라졌다. 집 안에는 핏자국이나 뒤집힌 서랍 같은 전형적 범죄 현장의 흔적이 없었다. 귀중품은 물론 아기 기저귀 가방까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감쪽같이 제거했을까.

그날 아침, 가족은 집 근처 머세드 강으로 하이킹을 나섰다. 그늘지고 완만한 길을 내려갔던 젊은 부부는 뙤약볕 급경사를 오르며 비오듯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땀의 증발 속도가 체온 상승 속도를 못 따라가는 지점에 이르자 몸의 냉각 시스템은 마비됐고 체온은 급하게 올랐다. 체온이 40도가 넘어가자 중추신경계 손상, 다발성 장기부전, 의식저하가 시작됐다. 이 시점에 부부는 "이제 하이킹 그만해야겠다"라는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부부는 아이를 살리려 덤불을 헤쳐 오르는 등 등산로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차례 차례 목숨을 잃었다. 아기는 가장 먼저 숨졌을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폭염이었고 사인은 열사병이었다. 제프 구델의 책 '폭염살인'은 캘리포니아 시에라 산기슭에 단란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던 부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자에게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폭염의 잔인한 공격은 칼이나 총처럼 날카롭거나 순간적이지 않다. 몸 속에서 둔탁하게 일어나기에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고통을 느끼는 당사자조차 죽어가면서도 죽음을 감각하기 어렵다. 몇십 분 안에 벌어지는 조용하고 점진적인 붕괴-열사병은 즉각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 중증질환이다. '폭염살인'은 그래서 "폭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연합뉴스

그래서일까. 서울에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지고 낮 최고기온이 38도를 찍은 4일, 산업안전보건법상 전면 작업중지는 법적 의무가 아닌 권고에 머물러있다. 체감온도 33도부터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이 법적 의무긴 하니까 휴식은 법인데, 정작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강제력이 없다. 권고를 지킬지 말지는 결국 사용자의 재량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사용자가 뿔 달린 악마는 아니다. 다만 이런 날씨에 연신 냉수를 마시며 땀을 흘리는 폭염 속 노동자가 살아 움직이는 한, 그 몸 안에서 어떤 살해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노동자 자신조차 자신이 죽어가는 줄 모른다. 다시 한번, "폭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 심각한 살인자에 대한 대응이 개개인의 운에 맡겨져 있다면, 비슷한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희생자가 주로 취약계층, 그 중에서도 노동현장에서 나올 것이란 사실도 명확하다. 최근 6년간 폭염으로 온열질환 산재를 당한 노동자는 180명, 이 중 24명이 숨졌는데 그 91.1%가 7~8월에 집중됐다. 매년 이맘때,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죽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달 29일, 체감온도가 34.4도에 불과(?)했던 강원 고성군의 한 공사 현장에서 40대 남성이 목숨을 잃은 사례를 보자. 남성은 공사를 마치고 그늘에서 '휴식 중에' 쓰러졌고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언론은 그를 '갑자기'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자기라고? 세번째 강조하며 변주해 말하자면 "폭염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몸 안에서 사람을 죽인다."

연합뉴스

보이지 않아서 위험한 살인자를 잡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보이게 만드는 것. 노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온도 38도 이상에서의 전면 작업중지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강제 조항으로 명문화하라고 요구해왔다. 그 요구는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38도에서 '권고'가 아니라 '의무'로, 쉬어도 되는 게 아니라 쉬어야만 하는 것으로 법의 문턱을 낮추는 일. 그 문턱 하나가, 그늘에서 눈을 감은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뜨는 눈이 될 수도 있었다. 최소한의 생계 앞에서 그 무방비함을 책임져줄 주체는 정보와 권력, 자본 등 모든 게 부족한 개인 보다는 국가여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폭염이 마치 짜증 나는 계절의 일부, 날씨의 극단적 상황에 불과하고 그래서 개개인이 더위를 요령껏 피하는 것이 정보의 전부가 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음에 누군가가 '갑자기' 또 쓰러질 것이다. 갑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그 말을 되풀이 한다면, 다음 희생들은 또렷이 예정될 것이며 기후변화 시대의 무덤은 해마다  커질 것이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